새 출발(2): 성령 충만으로 시작하세요  

2:4, 14, 16-18, 30-38


 

대학 입학 때면 신입생들은 선물을 받곤합니다. 신입생은 물론이고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소중한 선물 하나씩은 다들 받아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미국 올 때 함께하던 청년부원들이 주었던 만년필을 지금도 소중한 기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받은 것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가면 낡아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게다가 잘 못 사용해서 고장도 납니다. 선물은 받기도 하지만 주기도 합니다. 선물을 챙기지만 부족하게 준비해서 주고 싶은 분들에게 다 못줄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주려고 하는 사람을 생각조차 못해 빠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부족하지도 않으시고 빠뜨리시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입니다. 16절을 보면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기를 원했다고 말씀합니다(2:28).

 

사람이 주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은 아이나 어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17).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18절에서 그들을 이라 부르는데, 모두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못 받아 서운한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는 안 주실 거야라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선물을 받았다면 잃어버리지 말고 평생 간직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는 나는 안 받은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만 하며 모두가 다 받는 것이기에 저는 걱정은 안 합니다. 문제는 받긴 했는데 뭔가 충만하지 않아라는 느낌이 드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성령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면 그날만 기다립니다. 1: 4에 주님도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다리는 분들에게 가장 적합한 때에 우리에게 충만한 성령의 영적 체험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1:4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예루살렘은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관계적 의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제자들과 함께 모여 틈만 나면 기도하던 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1:12-13).

 

예루살렘은 주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행1:14절을 보면 제자들은 하나 되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끈이며 성령 충만의 비결입니다.

 

11:11-13절 말씀입니다.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성령 충만함을 간구하지 않을까요? 우선 기도가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기다림이 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약 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 정해두고 그 시간에 가서 할일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 시간이 아닌 주님 주시기로 한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 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하늘의 언어인 방언을 말합니다(2:4).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라도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2:14). 매일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2:16).

 

내 죄 때문에 주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2:23). 그리고 더 이상 내가 죄인임을 머뭇거리지 않고 고백합니다(2:40). 그럴 때 십자기를 통해 구원의 생명을 주신 구원의 기쁨이 날마다 넘쳐납니다(2:28). 그뿐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도 죽음 이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2:31).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합니다.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분임을 인정합니다(2:35). 지금 나의 모든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되는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지배했던 자녀들, 물질, 시간, 능력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2:36).

 

그런데 이런 체험을 이미 경험하신 분들 역시 한 가지 질문이 또 생깁니다. 예수 믿고 전에 한번 정도 느꼈던 그런 성령 충만함은 다시는 없는가? 그 감격과 기쁨 소망은 한번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통해 계속 성령충만의 역사는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사도행전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믿는 사람들에게 일회적으로 주어지고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하늘로부터 계속해서 믿는 자들에게 공급 되는 지속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 믿는 성도는 늘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을 행2:37-38절은 소개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찔림이 없습니다. 찔림이란 것은 우리의 단단한 마음을 녹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통로를 뚫기 위한 성령의 전초 작업입니다. 오랫동안 통로가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으로 막혀있으면 더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립니다.

 

내 의로 가득 차 있는 신앙생활이라면 오늘 심령에 찔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성도는 찔림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대답한 것처럼 주님은 회개를 원하십니다. 회개만이 방전된 심령을 재충전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남겨두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씩 주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지은 모든 것에 대해 죄 용서함을 받는 기쁨과 함께 성령 충만함을 입는 놀라운 출발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성령충만으로 출발하는 가을 학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