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인생(10): 나의 요새가 필요합니다
시59: 1-17
옛날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요새를 세워 방어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넘지 못할 정도의 담으로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5-10배 이상의 적들도 견딜 수 있는 이점을 발견하면서 점점 두꺼운 성벽과 높은
망대를 갖춘 성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참고 위키피디아).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나를
지켜줄 강력한 요새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죽을 듯이 달려가야만 하는 학교생활, 가정생활, 연구생활, 직장생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든 처지였으면(1-2절) 다윗은 모두가 자신의 생명을 찾는 것 같다고 3절에서 말합니다.
게다가 잘못하거나 죄와 허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3-4절)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과
그를 치려 하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이 괴롭혀도 나의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고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정말로
하나님 한 분 만이 자신의 요새가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 군인들을
보냅니다. 이때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창문을 통해 겨우 도망을 갑니다(삼상19:12). 왕의 딸을 아내로 삼아 왕의 사위가 되어도 시기와
질투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한 나라 장수가 추격자들이 풀어놓은 개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6, 14절).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지켜줄
강한 요새라는 깨달음을 그때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낮으로 자신을 찾아 다니는 무리들로부터(15절) 자신을 지켜줄 방패(11절), 피난처(16절)와 요새임(9, 16, 17절)로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람에게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가를 사울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영혼을
사탄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사탄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예수 믿으면 영이 구원받고 다른 영이 우리 속으로 들어 올 수가 없게 됩니다. 악한 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점쟁이가 되거나 무당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주팔자나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나의 혼이 나의 영을 괴롭히지 못합니다. 이것이 평강입니다. 성경 대부분은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많이 사용합니다. 혼은 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이 피곤하면 영과 혼은 그다지 문제가 안됩니다.
육신이 피곤함을 인식하고 휴식을 취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가 단순하면
지나갑니다. 그런데 복잡해지고 힘들어지면 그 현상들이 내 정신세계인 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가슴마저 쿵쿵거립니다. 손발이 저리는 현상까지 일어납니다.
사람은
정신적인 고통을 스스로 콘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약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다면 왜 스트레스 하나 이기지 못할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툭 털어버리고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늘 지배당해 집착하고 괴로워하며 살아 가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 스스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죽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일어난 고통에 대해 내 생각이(혼의 역할) 경험과 지식으로
처리를 못해 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안 되는 것은 영이 우리 속에서 관계 한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를
보고 ‘죽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정신적(혼) 문제가 영의 문제로 넘어 와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영의 세계로 들어오면 이미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영이 정신적인(혼)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차이가 납니다. 먼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영은 이렇게 대합니다.
요한복음 10: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도둑은 사탄과 온갖 귀신들을 말합니다. 사람은 창조 때부터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든지 아니면 다른 영이
자리잡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닌 다른 주인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은 감사와 소망과 즐거움을 빼앗아 갑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도 용서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영이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다 결국 심판 날에 예수 생명의 영을 받지 못했기에 영원한 사망에 사탄과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게 되면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던 영의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계3: 20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내 영을 다스리는 새 주인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영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요10:10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죽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생도 누리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 영혼의 요새가 되셔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그 풍성한 삶을 고전 4:7-8절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은 시대에 우리의 영혼을 지켜줄 요새가 필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가운데 내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다윗이 누렸던 평강을 맛보기를 원합니다. 삶은 힘들어도 영혼만큼은 스트레스 속에서 빠져 나와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주는 평강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