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인생(9): 악이 성할 때 믿음을 지키십시오 

58: 1-11


 

한 국가의 백성으로 살 때 어려운 시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적 파워를 가진 지도자가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시간입니다. 나치 등 역사에도 많은 예가 있습니다. 본문 1절도 지도자들이 마땅히 공의와 정의를 행하고 정직한 재판을 실행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악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성도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1)저항합니다. 2)방관자가 되어 묵묵히 바라봅니다. 3)적당히 타협하며 편안히 살아갑니다. 4)한 가지 더 반응이 있다면 그런 환경을 준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4)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3)악과 타협해서도 안 되는 것 알고 있습니다. 2)게다가 침묵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선 침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1)문제는 어떻게 저항하느냐 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 어떤 믿음을 가질 것인가 입니다.

 

우선 세상 권력자들에 대해 성도의 태도를 로 13:1절은 말씀합니다.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 말씀 속에는 권력 잡은 자들은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해 가도록 이 땅에 세운 대리인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 땅이 정의롭게 다스려지고 공의로운 심판이 실행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보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공의와 정의가 실행되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대한 반응을 다윗은 잘 보여 줍니다.

 

먼저 1-2절에서 권력자들이 먼저 정의로움보다 악을 행하고 오히려 폭력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비판의 강도는 점점 4-5절에서 세어집니다.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하여도 말 안듣는 독사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합니다. 요술사의 손에 있는 독사처럼 통제가 불가능하여 누구든지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은 또한 그런 사람들의 본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악을 행하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속성을 가졌다고 질타합니다(3절).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지적, 비판, 등의 말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저항의 표시입니다. 다윗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도 두렵지 않은데 누가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들 스스로가 공의와 정의를 무너뜨리고, 보호의 대상인 백성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할 때 성도는 저항해야 합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다윗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도망 다니는 신세이지만 군대장관으로 있을 때 분명 따랐던 군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다윗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 또 사울이 굴속으로 들어올 때 죽이거나 암살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6절을 보기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라고 요청합니다. 12:19(32:35, 10:30)절도,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합니다(5:44).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먼저 칼을 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6-9절처럼, 독사의 이와 사자의 어금니가 꺾이는 것은 백성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숨조차 못 쉬게 억누르는 폭력과 억압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유대 땅에 비가 오면 갑자가 급류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같이 악인들이 성하다가 곧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7). 8절에서 겨누는 화살이 꺾이는 것은 악인들의 계획이 잘 세워져 있을지라도 실행되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악이 성할 때 성도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놀랍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저주처럼 들리지만 저주가 아닙니다. 철저한 다윗의 전투이며 저항입니다. 다윗은 악에 대해 저항하는데 자신의 힘으로 꾀로 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께 의뢰합니다. 그리고 저항하는데 기도로 악을 철저히 차단시키고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스스로 칼을 들어 사울이라는 악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말씀이 우선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쯤하면 역사에서 무력으로 저항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요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력으로 악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우리를 사용하겠다는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면 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뜻이 전달될 때까지는 주신 말씀을 우선으로 따라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심판자가 될 수 있는데도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이 성행할 때 순종하는 한 사람이라도 땅에 있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스스로 심판자가 된다면 주님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자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다윗 스스로 심판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때 그의 가문에서 온 세상을 구원하고 마지막 때 심판주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는 축복이 임합니다.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악이 성할 때 하나님 명령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스스로 칼을 들어 악을 제거해 버리고 빨리 안정을 찾기 원하지만 인간 스스로가 하는 심판은 늘 틀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심판은 또 다른 심판을 낳아 더 험한 세상을 만드는 것을 우리는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틀리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주의 명령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역하 20:17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약속하십니다. 앞으로 악이 성한 험난한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이 마지막 날에 주님만이 심판자가 되신다는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