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인생(6):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시55:1-23
기도는 얼마나 해야 할까요? 기도에 관한 말씀을 보면, 중언부언하지 말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따라 하지 말라는(마6:7) 것으로 보아 길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것을 보면 지속적으로 기도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에 문제를(3-11절) 갖고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이 보입니다(1, 16, 17절). 사울에게 도망 다니던 다윗이 겨우 숨을 수 있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 정도였습니다(7, 12절). 하지만 그곳에서 생존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다가가다 배신을 당했던 것입니다(13-15절).
같은 지파 유다 사람 십 사람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집니다(시54장). 겨우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정말 심한 충격과 깊은 상처를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물면 되는데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아물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때 받은 깊은 상처를 길게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18-21절). 자신을 대적한 사람과 배신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매우 솔직하게 숨기지 않습니다(9, 23절).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탄식 기도(2, 17절)입니다. 내 속의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털어 놓는 기도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 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주님께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기에 기도 응답에 문제가 생깁니다. 왜 나는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을까? ‘하나님은 없어’라는 엉뚱한 변명만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요?
힘든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은 먹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자리로 나갈 때까지는 더 상황이 악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막상 기도를 시작해도 육신이 약해 며칠 못 갑니다. 기도 응답은 평소에 기도함으로 나의 기도 그릇이 채워져 있을 때 어떤 기도이든 구하기만 하면 바로 응답 받게 됩니다.
기도 그릇이 채워지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일 생길 때마다 긴 시간 드려 기도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늘 기도의 그릇이 채워져 있게 항상 기도하는 삶은 더 중요합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안 하는 사람과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기도 그릇이 채워져 있지 않을 때 더 문제는 기도 줄이 잡히지 않고 무엇을 간구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물이 반쯤만 채워져 있는 그릇은 조금만 움직여도 요동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는 별수 없습니다. 물을 채워야 합니다. 기도의 양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기도해야 하나요? 응답이 올 때까지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채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계속 기도할 때 내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내 심령을 통해 들려 주실 때까지 입니다. 내 심령 깊은 곳에서 기쁨이 몰려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주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시편 55편 거의 전부가 다윗이 드린 기도 내용이지만 유일하게 한 구절이(22절) 하나님이 준 말씀입니다. ‘네 무거운 짐을 주께 맡기라 내가 너를 붙들고 요동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 응답을 듣기 위해 그렇게 긴 시간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 응답의 그릇을 작게 만들면 바로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 그릇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데 우리 눈에 작게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 커 보이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작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23절에 그의 믿음이 고백이 짧게 고백됩니다.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모든 믿음의 기도는 응답이 빨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아가는 분이 가져야 할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기도 응답) 믿어야 합니다(히11:6).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우리가 요구한다고 다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답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안 좋은 것, 지체 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 내가 지는 것, 내가 물러서야 할 것, 남에게 양보 해야 하는 것이 답으로 올 때가 있습니다. 난감합니다.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바로 이 때가 사실은 진정 우리가 복 받는 때입니다. 내 뜻과 다른 그 소리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자체이며 내 기도 응답의 그릇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아니 그릇이 더 커지면 기도하는 양도 많아 져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응답 받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손해잖아요. 정말 그럴까요?
인생 살면 살수록 문제가 작아지던가요? 바로 이것이 우리 기도의 그릇을 키우는 이유입니다. 인생 살다 보면 더 큰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 옵니다. 지금 보다 더 강하게 짓누르는 삶이 있어도 이겨 낼 수 있고 견디어 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응답으로 주지 않을 때 그때 성도는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늘 얕은 물가에서만 우리가 놀 수 없습니다. 광풍과 폭풍이(8절) 있는 험난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더 쓰임 받는 사람일수록 그의 기도의 그릇은 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기도 응답이 지체되고 기다림 속에 울부짖음이 있게 만듭니다. 기도 응답은 ‘어디로 도망가고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고,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라는 구체적인 지시나 명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으로 주어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말씀이 들려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붙드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 내 심령 한 가운데서 들려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들려지는 시대에도 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다고 합니다. 말씀이 나의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길 수 있겠다는 결단이 서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 응답입니다. 그때까지 기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