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2): 위기를 잘 관리하는 삶 

51:1-6(새번역)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기가 있습니다. 예화자료: 한 집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아들은 훌륭한 의사가 되었고 다른 아들은 아버지처럼 술주정꾼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나중 술주정꾼이 된 아들에게 왜 당신은 아버지처럼 술주정꾼이 되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의사가 된 아들에게 또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왜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위기를 어떻게 관리 하느냐가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위기를 맞은 한 중년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가 발각되지 않게 하려고 사람까지 해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나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자신에게 온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인생의 위기는 다양한 원인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어디로부터 이 위기가 왔음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죄악, , 죄과, 범죄 등의 단어와 내 죄악, 나의 죄악, 나의 죄라는 표현을 볼 때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3절에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죄과와 죄라는 두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닥친 위기를 정확하게 대처하는 순서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죄과라는 단어는(transgression, 페샤) 마음이나 말, 아니면 행위로든 법이나 율법, 룰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어기고, 깨뜨려서 내가 잘못 했는가를 아는 것(인식)을 말합니다. 다음 라는 것은(잘못, sin, 하타크) 자신이 어긴 것이 벌을 받는 죄가 되며 자신이 그래서 죄인(공동번역)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죄에 대한 인식과 인정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둘은 차이가 있습니다. 잘못했음을 알지만 자신이 죄인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 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밀양이라는 영화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가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말에 분노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그와 비슷한 소리를 합니다. 시편 51장은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바로 4절입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께만 자신이 범죄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 소리는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살인자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용서해 주었기에 나는 편안하다.”라는 소리와 너무 비슷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입니다. 다윗의 고백 속에는 내가 사람에게 저지른 죄를 조금씩 인식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보니, 하나님께도 죄를 지은 것임을 더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위기 관리법은 우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파악하고, 다음은 죄를 인식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행한 잘못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선 세상과 믿는 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됩니다. 이때 용서를 받으면 좋겠지만 못 받거나, 받지 못할 만큼 너무 큰 죄이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세상과 구별되는 성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죄가 사람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이 자신의 죄를 보며 정말 뉘우치고 반성하며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 앞에서 회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하나님께 반역 죄를 지었다고 새번역은 그렇게 번역 합니다. 사실 다윗은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사람에게 한 여인과 한 남편에게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죄를 세상 법과 사람에게만 국한 시키지 않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직접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죄를 지었고 자신에게 내리신 판결은 옳으며(새번역), 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없다고(공동번역) 고백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벌을 받을 것을 스스로가 자처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도 몰랐고 절대왕권의 시대라 왕에게 죄를 적용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 벌을 알립니다. 비록 다윗 자신의 왕위는 빼앗지 않지만 태어난 아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왕권을 흔드는 반역들이 다윗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벌은 오직 하나님만이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이런 그의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 앞에 짓는 죄는 명백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영원한 죽음에 이른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죄 앞에서는 누구나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주위를 살펴도 나 스스로를 쳐다 보아도 모두 약한 사람들입니다. 죄 앞에 선 모든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은혜와 자비를 간구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1-2).

 

6절을 보면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마음속 깊이 선물로 주셨다고 다윗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인생 위기 관리법인 오늘 말씀을 잘 활용하는 졸업생들과 복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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