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3): 기초적인 자녀 양육
창 25:20-28
오늘 읽은 본문은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이삭과 리브가 부부가 자녀들을 키워가는
모습입니다. 이삭은 아이가 없어 25년 동안(20, 26)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자녀들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얻은 귀한 아이들을 부부는 온갖 사랑을 그들에게 쏟았을 것입니다.
쌍둥이라 같은
옷도 입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아이들로 키우려고 무단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지고
각자의 개성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그들이 가진 개성대로 자랄 수 있도록 격려 해 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가정 교육일 것입니다.
형 에서는 성격이
외향적인 성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집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에서는 그의 성격대로 익숙한(공동번역: ‘날쌘’) 사냥꾼으로 성장합니다.
반면, 동생 야곱은 성격이 차분해서 집에 머물기를 좋아했고 어머니 일을 돕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큰 아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지만, 당시 사냥 기술은 유사시에 가족을 지키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작은 아이는 딸이 없는 집에서 가사 일을 돕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각자
하나님이 주신 개성대로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부모도 흡족해 하며 그들을 키웠을
것입니다.
이 부부의 자녀 양육에 문제가 28절에서 발견됩니다. 아버지 이삭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사냥해 오는 이유로 에서를 더 편애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이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머물며 어머니를 돕는 아들이기에
그녀는 야곱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과연 이 가정에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자식에게 부어지고 있습니까? 자녀 사랑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결과는 자식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요? 에서는 아버지 사랑은
받지만 동생을 더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도 사랑 받고 싶지 않았을까요?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성격상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중 어머니
리브가와 동생의 책략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복이 동생에게 돌아가자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비록
아버지도 야곱에게 속긴 했지만 에서는 믿었던 아버지로부터는 배신감 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그 서운함이 어쩌면 나중 부모가 다 싫어하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창26:34-35). 더 나아가 어릴 적부터 믿었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자신을 속인 동생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에서를 바라보는 야곱은 어떨까요? 야곱 역시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냥을 할 용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자신은 고작 집에서 아버지 옷이나 세탁해 드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형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한번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야곱은 한번이라도 아버지께 인정받는 아들로 서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자라 그려내는 미래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먼 훗날 장자권을 가지려고 했던 야곱의 심리도
어쩌면 형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편애에서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장자이기에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저 장자권만 가진다면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 주실거야’ 라는 잘못된 생각이 키운 결과일 수 있습니다. 형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 느낌을 한번 받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들 사람으로 아버지를 늘 만족하게
하는 에서는 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야곱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큰
아들이라는 개념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야곱에게서 자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장자권을 자신이 가져야 하다는 강박관념이 어린 시절 강하게 내면에서 자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는 나름대로 골고루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자식들이 문제입니까? 어떤 부모치고 자식에게 사랑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랑도 잘못 나누어지면 자녀들은 자신들에게서 늘 결핍한 것을 채우려는 몸부림이 발생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야곱 개인의 이기심과 욕심도 한몫 하지만, 우선적으로 부모들의 편애가 형제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경쟁상대가 되고 미워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부모 사랑이 자녀들에게
편파적으로 흘러갈 때 자녀들은 뒤틀어진 모습으로 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가정은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 하나만 키우는 가정이 많다 보니 너무 지나친 부모의 사랑으로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 아는 고집스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어릴적부터 자율성을 가진 자녀들로 키우려는 학교의 교육 방침부모의 열정이 합쳐지면서 너무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려는 면이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꺾어라. 이것을 빨리 꺾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자녀들이
기르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제멋대로 내버려 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예화인용).
강한 어조를 사용해서 조금 어색하게 들리지만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고집도 함께 자랍니다. 상대를 무조건
꺾으려 하기 전에 자녀의 잘못을 고쳐 주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고집만 주장하다 보면 하나님 말씀도 순종하지
않고 어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으로 커 가는 나무입니다. 부부가 자식을 향한 올바른 사랑이 쏟아질 때
가지에 달린 열매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영양은 공급해야 하지만 지나치거나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상처와 아픔이 없이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게 자라는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인용: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7PS&articleno=12027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