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6):변화를 요구하는 십자가 

5:16-21


예수 믿고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변화되고 간증이 나오는데 정작 본인은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고 바로 거짓말하는 것 바로 버리셨습니까? 욕하던 습관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렸습니까? 욕심, 시기, 질투, 분쟁하는 것 없어졌습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성도들의 반응들도 다양합니다. (#1)당연히 예수 믿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새 사람 되고 예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는 것 아닌가요? (#2)예수 믿어도 그런 모습은 그대로 남는 것입니까? 뭐가 정답이지요? 


변한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예수 믿는 순간 내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존재라고(고후 5:17) 하는데 왜 나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남들은 이전의 악한 것들 다 사라지는데 왜 나에게만 남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선포된 말씀과 실제 모습을 보면 상당한 혼란이 생깁니다. 변하지 않은 모습에 예수 믿기로 한 본인 자신도 실망을 합니다. 더 나아가 안 바뀐 삶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에 대한 조그마한 이해 부족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롭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 성령이 내주하게 되어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지배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확실히 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이 즉각 나를 365도 확 바꾼다는 의미보다 성령이 나를 움직여 갈 수 있는 전혀 다른 구조가 내 속에 마련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심삼일 만으로만 끝나버린 결단들이 이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점점 나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순간 자동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한한 능력을 가진 성령은 왜 내 속에 내재하면서 왜 나를 강제로라도 확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요? 게다가 변화를 체험한 성도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구습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에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는 성령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발휘 되도록 하는 뭔가를 요구하십니다. 개스가 있다고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문제점이 하나 지적 됩니다.


성령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다면 성령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인가?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되시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성령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3:20절을 보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이 어떤 분인가를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성경구절입니다.


성령은 강제로 우리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내 속에 내재하는 성령 하나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적, 감정적, 의지적인 나의 전인격이 성령에 인도함을 받도록 허락하는 만큼 성령은 내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 가십니다.


결국 성령의 요구 수준에 나의 전인격적 결단이 도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 번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수준에 이르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점진적인 순종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일단 수준에 오른 분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냥 계속 성령 충만하게 일생 동안 쭉 이어지면 참 좋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교만도 슬그머니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크게 넘어지는 경우도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요? 성령님께 내어드린 주인의 자리를 다시 내 자아가 살아나 빼앗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 15:31)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내 자아가 죽고 성령이 주인 되는 가장 기본은 예배뿐입니다. 가장 먼저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화http://www.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66043.인디언들에 의해 전해지는 교훈이 있습니다. 인간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시기, 질투, 분노, 탐욕, 교만, 거짓, 열등감, 허영, 자랑, 거짓자아, 죄의식 등을 나타냅니다.


다른 한 마리는 전혀 다른 인간의 본성을 나타냅니다. 사랑, 용기, 친절, 겸손, 관대. 진실, 신뢰, 성실, 소망, 믿음, 동정, 관대 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의 늑대는 늘 싸우기를 좋아하고 반드시 한 놈이 싸워 이긴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길까요? 힘과 이빨이 센 놈이 이길까요?


이 싸움에 이기는 놈은 우리가 먹이를 주는 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삶이 변하는 것은 기도 말씀 찬양이 있는 예배, 구제와 봉사, 전도와 선교, 친교의 신앙 영역을 통해 나의 전인격이 성령에 순종하는 만큼 일어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을 요구하는 리스트가 19-21절에 소개됩니다.“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고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입니다. 육체의 욕심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모습을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16절은 말합니다.


십자가는 진정한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나의 전인격적인(지정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사순절에 날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훈련이 있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 삶의 주인 되어 가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