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5): 핍박 받는 십자가
갈5:11;
마5:10; 눅6:22; 고전1:21; 고후 4:8-9
지난 주에는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라보는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참 힘이
듭니다. 생략하고 넘어 가고 싶을 정도로 부담이 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복이 아닌 박해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을 때 핍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 믿는 것을 포기했을까요? 아닙니다. 핍박보다 구원이 더 필요하기에 우리는 예수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핍박 당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일단 많이만 믿게 만들었을까요? 진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하신 말씀들이 증거들입니다. 마5: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분명
예수로 인해 오는 박해를 말합니다. 여기서 성도가 받는 핍박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죄 사함(의)을 얻는다는 진리를 따를 때 오는 핍박을 말해줍니다.
눅 6:22절은 더 확실하게 주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예수 때문에 핍박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오픈도어선교회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한 해 살해되는 기독교인의 수가 세계적으로 2015년에 7,000명, 2016년 1,200명, 2017년에 3,078명이라 합니다. 출처: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94886/20180110).
2015년에 비해 2016년이
수가 줄어든 이유는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과격 무장세력 단체인 보코하람의 활동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나이지라의 무슬림 세력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작년에 그 수가 늘어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해가 보고되고 통계가 잡혀서 위험을 알 수 있는 곳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 한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
인권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의 수준이 도를 넘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탈북자의 수가 3만이 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입을 통해 점점 북한 기독교의 박해에 대한 간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형제자매이고 아직도
나이든 분들은 가족들이 그곳에 살아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아픔을 가진 민족과 나라는 우리뿐입니다.
북한 기독교인들의 핍박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너무
잔인하고 가슴 아픈 간증들이라서 상당히 고려해서 골라 뽑은 것입니다. 같은 민족인데도 단지 다른 정치체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영상자료).
사순절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핍박 받는 십자가를 반드시 묵상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해 반드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핍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는 핍박이 없지만 핍박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우리 교회 선교가 더욱 폭 넓어지기 바랍니다. 아직도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돕는 시민단체들을
돕는데 관심과 물질이 보내질 수 있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 통일을 위한 관심과 기도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탈북을
돕는 일은 일단 사람의 생명을 살립니다. 그들이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얻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있는 일들입니다. 지금은 비록 삼만 명 정도의 탈북자 수이지만 사실 이들과 연관된 북한의 가족들은 10만이 넘습니다.
정치나 외교영역에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아픔을 알고 그들을 위해 돕는 길을 찾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북녘 땅에 임하기를 위해서, 이제는 알려진
수용소나 지하교회에 핍박이 멈추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때로는 핍박이라는 고난을 감수하게 합니다. 영상물에서 보신 노인의 질문은, 왜 십자가 때문에 핍박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수많은 성도들이
가정에서나 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로부터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핍박 당할 때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고전 1:21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미련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까요?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죽음도 감수해야 되는 외길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과 두려움에 싸이지 말기 바랍니다. 고후 4:8-9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는 놀라운 약속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전도로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면 핍박은 성도의 선택이며 사명입니다. 우리
주변이 핍박 당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더 큰 하나님의 위로가 분명히 있을 줄 믿습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과
사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먼저 아는 우리를 사용해서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는 핍박가운데 더 많은 영혼들을 건져 내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계시는 분들에게 아픔보다 주님의
은혜가 더 크게 임할 것을 믿습니다. 지금도 가정에서 세상에서 핍박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