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1): 은혜와 평강을 허락하는 십자가 

1:1-3, 11:6



이번 주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이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 십자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신년 40일 새벽기도를 마쳤지만 교회는 사순절에 더 기도하고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에서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십자가를 묵상하며 개인과 가정,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왜 특별히 이 기간에 더 기도 해야만 합니까? 물으신다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째는, 우리 각자에게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학업, 졸업, 직장, 결혼, 자녀 문제, 질병 등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산적해 있기에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했다는 증거입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문제 가운데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이미 그 문제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답이 있는 방향을 정하고 달려 가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거리 선수이면 빨리 경기를 끝낼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라면 긴 시간을 달려야 합니다. 기도는 인내를 전제로 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는 경우는 지금 마라톤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별히 성도가 사순절을 맞아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도 훈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성도가 참 많이 실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기도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으면 예수 믿는 것이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초신자들이 기도하면 다 들어 준다고 하는데 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나오던 교회도 포기합니다. 심지어 믿고 세례를 받으신 분조차도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실망하곤 합니다. 운동경기 자체가 다르면 훈련 받는 것도 다릅니다. 마라톤 선수가 단거리 선수처럼 달리면 바로 쓰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승전에 주님이 계시고, 응답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의 훈련이 필수입니다.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것들이 기도가운데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은 이렇게 물으시겠지요? 기도하면 다 됩니까? 저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기도의 응답은 질병이 낫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길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기도 가운데 십자가가 주는 은혜와 평강을 맛보게 하십니다. 오늘 설교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더 큰 기도의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평강과 위로를 한없이 허락 받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제 이야기를 좀 하겠는데요. 저라고 죽고 싶었던 때가 없었겠습니까? 정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말씀 드려야 더 맞을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괴로워하면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생각은 아닌데 실제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안 풀리는 것 알면서도 생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그런 생각을 집어 넣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싸움을 아셔야 합니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는 기도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성도입니다. 아직 그런 감이 없다면 믿기는 하지만 기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영화 한 프로, 한 잔 마시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문제가 단순해집니다. 정말 힘들면 하나님 앞에 눈물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흘릴 눈물도 마르면 이제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저에게는 인생의 최고 문제를 만날 때마다 늘 하나님이 기도 가운데 십자가로 해결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힘든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늘 사순절에 다가왔고 사순절이 마쳐질 때쯤 또 문제도 풀렸습니다.

 

그때마다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아들이 아파 죽을 지경일 때도 하나님의 음성이 저에게 십자가와 관련해서 들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을 알겠느냐?”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죽음이지만 반드시 그곳에서 우리가 체험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죽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가장 귀한 아들을 왜 죽이는가에 대한 이유와 실제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체험케 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어떤 아비가 자식 죽여 남 살리고, 죽는 자식은 기꺼이 죽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게 될 심판과 영원한 사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고 우리를 그곳에 보내지 않으려는 두 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이것을 알게 하십니다. 저는 그때 병원 바닥에 앉아 울었습니다.

 

두 번째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바라보게 하시고 쓰레기와 같고 걸레와 같은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을 체험한 날입니다. 그때 들려준 음성은, “그런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주님의 명확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때도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죄인인데 나를 죽이시지 않으시고 주님이 대신 죽으신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처하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과 아픔과 눈물과 죄에 대한 해답입니다. 십자가를 말하면서 이 비밀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풀리지 않은 문제를 그대로 안고 사는데 그것이 어떻게 해답이냐고 반문합니다. 문제는 계속 내 주위에서 나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이 쏟아지면 문제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게 하는 능력입니다. 아픈 것이 그대로 있어도 나에게는 평강이 몰려 오는 비밀입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나의 아픔도 주님이 가져 갔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누구에게나 할량없는 위로를 부어주십니다. 죽을 병도, 걱정과 염려 불안과 복잡한 것들도 이제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기쁨으로 찬양하며 문제들을 이겨 나갑니다. 이것이 성도의 십자가 승리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순절에 십자가를 믿고 바라보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성도를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문제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여유도 갖고, 웃으며 남까지 돕고 있으니 그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보이겠습니까?

 

사순절에 더 십자가를 묵상하며 기도할 때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해질 줄 믿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이 십자가에거 죽는 사건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주님이 오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죽어셨던 위대한 사건이 있었던 역사적인 은혜의 시간입니다.

 

성도는 사순절에 더 은혜와 평강을 허락 받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때나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움추린 긴 겨울의 칙칙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새싹이 나고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을 맛보는 그런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이 다른 계절에도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봄과 연관된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새로운 계절 봄을 보며 죽은 생명이 살아나고 소망을 잃었던 삶들이 다시 살아나도록 이 사순절에 십자가는 세워졌습니다. 나의 죄와 고통을 위한 저 구원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부르짖을 때 주셔서 넘쳐나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