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결단(5): 진실된 사랑을 원합니다
로12:9;
요일 1:8-9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원합니다.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남녀 간에도 그렇고 결혼한 부부간에도
거짓 없는 사랑을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화참조: http://rel0608.tistory.com/152.
아들 하나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통 사고를 당해 아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실망과 좌절로 망가져 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의 가슴은 타 들어만 갔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아무것도 해 주 수 없다는 것이 더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누군가 한쪽 눈을 기증해 준다는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기뻐할 청년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한 쪽 눈만
보면 뭐해. 여전히 애꾸인데.’라며 투덜거렸습니다. 드디어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실에서 붕대를 풀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바라본 것은 자신의 침대 옆에 누워있는 어머니였습니다. 깜짝 놀란 아들은 달려 갑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미안하구나. 두 눈을 다 주지 못해서. 다 줄 수 있었지만 그러면 안 보이는
내가 너에게 짐이 될까봐. 미안해 아들아. 엄마를 용서해다오.’
우리가 받은 사랑은 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반대로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나름대로 예수를 믿고 난 뒤 이웃과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드렸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성도님들에게 과연 무엇이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성도의 진정한 사랑인가에 대해서만 집중하여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로12:9상반절에, 성도의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실되고 진정해야 하며’(sincere: NIV), 위선이나 외식함이
없어야 하고(without hypocrisy: NASB) 또는 위장이나 시침이 때는 것이 없어야(without dissimulation: KJV)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는 누구를 만나 친구가 되든지, 사업을 하든지, 실험실에서
서로 프로젝트를 놓고 공동연구를 하든지, 아니면 서로 사랑해 결혼에 이르게 되든지 늘 진실된 모습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늘 거짓은 진실 되려고 하는 것들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어단어 sincere는 단어는
라틴어 ‘시네 세라’에서 왔다고 합니다. ‘밀칠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sun tested’로 번역되고 ‘햇빛에 시험해
보다’그런 의미입니다. 도자기와는 달리 옹기는 원래부터 실용성을
감안해 두껍게 만들기에 불에 구워도 잘 안 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싼 도자기는 옹기보다는 더 얇고 예술성을 강조하기에 얇게 만들고 선명한 색깔을 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자기는 굽기 전부터 금이 가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정직한 도공은 그런 도자기가 나오면 깨드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한 도공들은 꾀를 내었다고 합니다.
색소에
밀초를 섞어 갈라진 틈을 메꾸어 유약을 발라 상품으로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 보기 위해서
햇빛에 비추어 보면 밀초를 메꾼 자국을 확인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후 흠이 없으면 ‘sine cera’라는 글자를 세겨 판매했다고 합니다(예화출처: 아래 참조).
제 아무리
사람들을 속여도 또 그것을 알아내는 기술도 발달할 뿐 아니라 더 똑똑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가 숨기는 것 알지 못하고 계시는 분일까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두 가지를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진실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을 ‘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한 개인에게 죄가 없다는 선포가 일어납니다(칭의).
죄를
찾을 수 없기에 진실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를 덮어 주기 때문에 죄 없는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다는 두 번째 의미를 요일 1:8-9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고 난 성도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한
가지 행위가 뒤따라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앞에 것은 단지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번 것은 우리의
연속적인 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성도에게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라는
진리가 마음 속에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순간 내가 죄인임을 알게 만듭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도’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라고 요일 1:8절은 말합니다.
예수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성도도 죄의 본성으로 인해 죄짓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죄로 인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자백하면(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9절에서 약속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사랑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실됨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됨을 얻도록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도록 늘 회개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은 사랑의 필수요건입니다. 사람이 하는 사랑에도 진실이 요구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거짓이 없어 진실된 것이 아니라, 거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됨을 용서해 주는 주의 보혈의 능력 때문입니다.
거짓이 있을 때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진실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의를 회복한 성도가 드리는
섬김과 봉사가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진실된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