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결단(2):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자
로 12:2
새해에는 많은 결심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2018년도
기도제목과 함께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난
못했는데’ 라고 생각이 드시는 분은 이제라도 시작하면 됩니다. 하다가
그만 둔 분들도 다시 하기 바랍니다. 성도가 결단을 하고 나아가는 것 자체를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시카코에 윌리엄 보덴(1887-1913참조: Wikipedia)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은광을 하여
엄청난 부자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는 견문을 넓히라 아들을 위해 세계 여행을 보냅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너무나 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의 부담을 가집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일생을
전도하는 일과 그 준비에 바치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
결심과 함께 성경 뒷면에 “지체할 수 없음”이라고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일대를 졸업 후 프린스톤 신학교를 마치고 중국 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는
도중 이집트에 잠시 정박하게 됩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곳에서
뇌막염으로 한 달 만에 서른도 안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아. 참 안 되었어. 헛된 일 했군.’
여러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발견된 성경책 뒷 갈피에서 ‘후회 없다’라는 결단의 메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드리겠다는 성도의 결단이 있다면 그 결심을
주님은 기뻐하고 받아 주십니다.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 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품은 여러분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기도할 때마다 힘주시고 우리에게 주실 선한 계획을 보여주시며 함께 이루어 나갈 줄 믿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바울 사도는 새로운 결단 하나를 더 요구합니다. 2절에, ‘이
세대(개)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은‘이 세상’(공동, 현), ‘이 시대의
풍조’(새)를 본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먼저 번역들이 이렇게 다양한 이유가 뭘까요? 바로 세상이라는 단어가
그런 개념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할 때도 세상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그리고 질서 가운데 움직여 가는 눈에 보이는 우주를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12:2에서는 ‘아이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시간 개념으로 물질적인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이면에 있는 영적인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자리잡아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사상이나 유행 등 세상 풍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 산으로 간다든지, 세상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나 경제체제 내에서 세워진 국가나 학교제도 자체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그런 태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거슬리며 움직여 나가는 정신,
가치관, 세계관 등에 저항하는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제 성도가 세상을 살아갈 길이 보입니다. ‘코스모스’라는 세상 한 가운데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살아가면서
‘아이온’이라는 세상 풍조를 거부하는 삶을 살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이 하나님 지으신 세상을
자신의 원리로 다스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이라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자연스럽게 우리 자녀들이 어려서는
세상 친구들과 학교나 놀이터에서, 어른이 된 후에는 직장에서 어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예수쟁이로 살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본 받지 않고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음악장르도 다양하지만 대중음악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힙팝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뉴욕 브롱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힙팝 가수 중에 최근 유명세를(Show Me the Money #5) 날리고 있는 ‘BewhY’가
있습니다. 이 가수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는 비결은 매니저도 없이 평범한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힙팝이라는 쟝르는 알다시피 자신이 이해하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가사로 표현해 냅니다. 대부분 비판적이고 정말 듣기 저질스런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병윤이라는 이 가수는 자신의 신앙을 랩으로 그대로 노출시키는 과감한 자신감이 독특한 매력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요즘 기독교에 반감을 사는데 이
가수에 대해서 만큼은 악플 보다 오히려 함께 공연장에서 가사를 부르고 빠져 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성경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믿음의 고백을 그대로 여과 없이 사용하는 과감성을 보입니다(보기).
저는 이 가수를 보면서 바로 오늘 본문의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음악이라는 한 가운데서
수 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힙팝을 통해 기독교를 조롱하고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인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분리된 게토를 만들어 가지 않고
세상문화를 공유하며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인터뷰를 보면 자신을 세상이 속되게 표현하는 ‘예수쟁이’라고 대중들 앞에서 당당히 말합니다. 튀지만 오직 예수로 인해서만 튑니다. 예수가 드러납니다.
성도의 삶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남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여 뭔가 튀는 것을 보이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관심을 끌어내는 삶이 아닙니다. 그냥 주님이
세상 한 가운데 사셨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삶이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리차드 니버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지은‘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문화에 대응하는 다섯 가지 유형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유형으로
소개한 ‘문화의 변혁자인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 성도가 본
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안 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삽니다’가 아니라 그냥 세상 평범한 사람들이 다니는 슈퍼마켓에서 음식 먹고, 세상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죽으면 사람들이 묻히는 묘지에 묻히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삶을 삽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했습니다.
세상을 배격해서는 안됩니다. 주님도 세상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러내야 할 것은 말씀이 나를 지배하기에 그대로 살아서 말씀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행동에 차별화가 생기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고 이 세상을 본 받지 않는 결단 있는 2018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