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결단(1): 산 제물이 되기 원합니다
로 12:1; 요일 1:9
2018년의 첫 주일입니다. 너무 기대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쑥쑥 자랄 것과 믿음의 가정들이 주 안에서 누릴 평강을 기대하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교회도 든든히 믿음으로
성숙되어 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학업, 직장,
삶의 모든 환경들도 풀려 갈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향하신 선한 소망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이런 소망 가운데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는 지금까지 긴 시간을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다 12-16장까지 넉 장은 구원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그 첫 번째로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단 이해가 잘 안갑니다. 들은 것들은 많은데 막상 어떻게
하는 것이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먼저 무슨 뜻인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제물은 동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드려지는
제물은 죽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제물의 정의는 산 것을 죽여서 드릴 때 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사람의 죄 때문에 동물이 죽는 죽은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몸이 살아있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죄와 무관한 삶을 내가 살아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죄 짓지 않는 삶 그 자체를 살라는 엄청난 요구가 있습니다.
일단 의미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 (죄 짓지 않고 사는 삶이)가능한 것인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 짓지 않고 사는 것은 힘이 드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죄 짓지 않으려는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옷에 떼가 잘 빠진다고 세탁비누를 매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다고 죄가 빠져 나올까요? 의지는 칭찬할 만하지만 어리석은 짓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착한 행위가 우리의 죄를 가려줄 수는 없습니다.
죄는 죄이고 그 죄에 대한 값은 반드시 죽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것은 그들의 엄청난 착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보상받지 못하였음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드려도 죽는다면 산 제물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왜 바울이 우리에게 권하겠습니까? 그것도 매우 강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권합니다’대신 NIV나 NASB는 좀더 강력하게 ‘urge’를 사용합니다. 원문 그대로는 KJV의 ‘beseech’입니다. 그렇게 할 것을 힘을 다해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화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수 안 믿는 분들과 교실에서 실험실에서 직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욕이 나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세요? 친구들은 이미 들었는데 후회하면 뭐 하리 하면서 슬쩍 넘어가십니까?
바로 이때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사는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하는 삶입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 보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야 뭐 그런 것까지 주의해가며 어떻게 살아. 좀 자유롭게 살아.’그러나 성도는 바로 그 순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죄 짓지 않기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에 죄를 지어도 죄를 용서받는 회개가 있기에 죄 없는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삶이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신앙입니다. 이것을 요일1:9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서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서는 안 되기에 회개의 순간 주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 죄를 회개할 때 나는 죽고 다시 살아 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비밀입니다.
듣기는 쉽지만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창피를 무릅쓰고 남들에게 나의 실수와 죄까지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 제물이 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죽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곤 합니다. 내 수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를 한번 보기 바랍니다. 죄 지은 사람은 소,
양, 염소 그리고 돈이 없는 사람은 비둘기를 잡아옵니다. 그리고 동물 머리에 안수를 합니다. 자신의 죄가를 전가 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동물들이 알아 듣기나 하겠습니까? ‘야 인간 니가 죄짓고 왜 나에게
죄를 넘겨.’나무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눈이나 멀끔히 뜨고 끌려가서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내 몸이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주님 앞에 나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이 원리를 1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mercy)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안 죽게 해주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내 삶에서 죄가 발견될 때 회개로 나아가 다시 주 안에서 살아나는 영적 예배가 드려지는 복된 2018년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