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3): 평화를 선물하는 주님 

2:14; 2:14-18


2017년도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세상은 아픔이 여전합니다유난히 전 세계가 불안해 한 해입니다. 우리가 사는 뉴욕에도 6주 전 트럭돌진 테러가 있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도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출근길 타임스퀘어 지하철에서 폭탄테러로 부상자들이 나왔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아직도 초긴장 상태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풀리지 않고 긴장만 고조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최근의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발언은 오랜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붙여 화염과 죽음의 소리가 뉴스로 들려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전쟁과 테러로 가득 찬 세상에 평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사실 기적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1914년 일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던 성탄이브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2005년에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buDXhKg5Yo


아무리 서로 죽이는 전쟁이라 할지라도 평화가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때문입니다. 그 비밀을 엡 2:14, 17-18절에서 바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평화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4)…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화를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7-18).”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를 성령 안에서 (형제자매로)하나 되게 만드신 이 엄청난 사실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주님의 오신 사건 그 자체가 세상에는 평화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왜 이 평화는 우리들 사이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모두가 바라지만 평화가 올 것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적다면 문제는 달라 집니다.


약 4:2절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말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기도가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기도회가 너무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기도가 많았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모여 기도하는 새벽기도회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수요일이면 수요예배에 모여 온 성도가 기도합니다. 이틀이 못 되어 금요일 저녁에 모여 다시 밤을 지새며 기도하는 철야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또 다음 날 저녁이면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고 주일날 내려오는 산상기도회가 있습니다.


주일이면 또 통성기도회로 교회와 개인의 문제를 놓고 부르짖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이라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모든 것이 마쳐지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참 얼마 전인데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재미있는 연속극과 소셜미디어가 자리잡으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밀려 났습니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이 세상을 뒤덮을 때 기도하는 자리들은 비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개혁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회복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기도가 우리 코넬한인교회 온 성도들 삶 속에서 살아날 줄 믿습니다.


중보기도팀이 주일날 12시에 314에서 모입니다. 중보기도팀은 교회의 비밀병기입니다.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는 잃은 사람들을 찾는 수단입니다. 찾아가서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전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갑니다. 그러나 기도는 공격하려는 적을 두렵게 해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땅을 넓혀도 적들이 쳐들어 와서 우리를 상하게 한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온통 나의 삶에서 평화가 사라진 이유는 사탄이 두루 돌아다니며 위협하고 삶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님은 각자 비밀병기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제부터 기도가 불붙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평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물론 이 평화는 최우선적으로 영적인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로 인해 원수와 같았던 관계가 회복되는 그런 의미입니다(2:15-16).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의 삶에서도 실제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중세를 지나 복음이 세상에서 개혁을 이루어갈 때 억압적인 종교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절대왕권이 아닌 백성들이 우선되고 국민에게로 주권이 나오는 세상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나치, 파쇼, 독재를 물리치고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쟁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은 미움과 다툼, 전쟁으로 생긴 사람들 사이의 벽조차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움이 사라집니다. 다툼과 분열이 화해로 치유되어 갑니다. 전쟁의 기운이 도는 땅에도 평화가 싹틀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이 폭력과 테러, 더 나아가 전쟁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희망이며 해결책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새해에는 우리 가정들과, 조국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