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4): 훈련으로 체질화된 감사를 드리는 다니엘
단 6:1-10
11월 한 달 동안 감사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나, 히스기야, 하박국 세 사람의 감사를 보면서 감사 안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먼저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죽을 생명을 위기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질병 가운데 생명을 연장 받습니다.
하박국
역시 전쟁으로 많은 것을 상실하지만 앞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세 사람은 한 가지 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훌륭한 왕이긴
하지만 종교개혁 등으로 인해 우쭐해진 교만이 그 속에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하박국은 나라 전체가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해 나라가 적들의 침입을 당하게 됩니다. 모두 자기 자신이 죄를 짓거나 아니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전체가 지은 죄로인해 고난 가운데 처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풀려 감사하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사람에게나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정말 억울하게 고난이 찾아왔는데도
감사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전에 바빌론에 유다의 왕족으로 볼모로 잡혀 왔습니다(1:1,3,4).
그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름까지 바뀌고(1:7)
자신의 신앙도 위협받는 그런 험난한 고비들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도와 지금은 한 나라의 총리로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6:2). 왕은 너무 지혜롭고 뛰어난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다른 총리들과 다른 고관들의 시기를 받게 됩니다(6:3).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꾸며집니다. 먼저 다니엘의 잘못을 찾으려고 했지만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6:4). 단지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의 삶을 건드리게 됩니다(6:5).
그리고는 엉뚱한 법령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30일 이내 누구든지 왕 이외 어떤 신에게나(왕이 신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 법령입니다. 왕도 이들이 꾸미는 의도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신처럼 대우 받는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마다 하겠습니까?(6:7).
여기서부터
다니엘의 믿음은 세상에서 돋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일국의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총리로서 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나라가 세운 법령을 어기지 말아야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6:10을 보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강한 의지의 표시 입니다. 동시에 제국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왕의 조서보다 더 자신을 지배하는 뭔가가
있음을 드러내는 믿음의 모습입니다(눅 12:4-5).
바로 이것이 다니엘이 기도 가운데 감사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통해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도구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이런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믿음을 갖는 이유입니다.
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주를 위해 죽을 수 없는 성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믿음을 가진 순간 주님을 위해 죽기로(증인이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의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일상
신앙 생활에서 주님을 위해 훈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은 죽을 줄 알면서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갑니다. 혼자만의 기도처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다니엘입니다. 그곳을 찾습니다.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삶입니다.
이런 훈련된 삶이 있지 않고는 하루 아침에 죽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말로만 뻥 칠 수는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멋있다’ 소리는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상에서 훈련된 사람을 더 원하시고 계십니다. 훈련은 주님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은 철저한 예배와 순종의 훈련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내 신앙 스타일과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나면 훈련 받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고쳐나가기 전에 내가 먼저 한번 맞추어 보는 그 훈련이 바로 순종의 훈련입니다.
꼭 해 보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어디까지
우리는 훈련 받아야 할까요? 다니엘이 훈련 받은 것만큼 훈련 받기 원하십니다. 마음은 때로 거부할지라도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 가기까지 훈련 받아야 합니다. 이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마 26:41).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목장모임에 소개한 적이 있어
목원들이 같이 본 목장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안 보신 분이 계시면 다시 한번 연말에 가족들이랑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에릭 리델)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의 100미터 경기의 최고의 유망주로 영국대표로
나옵니다.
그런데
출전 일이 주일 임을 알고 경기를 포기합니다.
온 영국이 원했지만 그는 객기로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늘
자신의 것을 다니엘처럼 포기하는 삶을 평소에도 훈련하며 살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 년 뒤 올림픽에 나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이로 우승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해오던 대로 주일 경기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400미터에 나가 메달을 목에 겁니다.
우리도 내 것, 내 영광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리는 도구가 된
것에만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삶이 말로만,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고 몸으로 움직이기까지 체질화 시키는 신앙인이 되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