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16): 근심 vs 평안      

시 64:1-5, 7, 10

 


인생을 살면서 잘 대응해야 할 것은 근심과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한 순간에 삶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적을 물리친 장군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원수들로 인해 근심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다윗의 내면의 고요함을 깨드리게 했을까요? 3절을 보면, 원수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한다고 합니다. 비난하기 위해 거짓말을 부지런히 꾸며대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그들의 악한 계략의 말로 인해 실제적인 공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근심에 빠져 있었던 것 것입니다.

 

또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적을 완전히 죽일 목적으로 화살에 독을 묻히듯이, 다윗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말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망하도록 적들은 아주 독한 말로 비방하고 중상모략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준비만 한 것이 아닙니다. 4절을 보면 실제 다윗을 향해 독한 화살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것들이 다윗을 쓰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것으로 인해 극심한 두려움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것입니다.   

여기서 ‘화살 같은 독한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

 

독한 말이란 남을 비판하는 말, 비방하는 험담, 근거 없는 소문으로 모략하는 말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런 독한 말로부터 상처 입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방법을 단계별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단계는 상대의 말을 곱씹거나 찾아가 해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 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독한 말이 내 속에서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절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나를 즉시 ‘숨겨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안식을 얻는 비결입니다.

 

둘째 단계는 내 방식대로 싸우지 말고 하나님이 일어나 직접 싸우는 반격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3절에 의하면, 세상에서 ‘악을 꾀하고 행하는 자들’은 의인들을 해하기 위해 화살을 은밀한 곳에서 겨눕니다. 4절을 보면, 더 비겁하게 상대에게 치명타를 주기 위해 눈치채지 못하게 갑자기 화살을 쏩니다.

 

그런데 7절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악인들이 겨눈 화살이 의인에게 꽂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가슴에 꽂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의인을 위해 역사하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의인을 향해 쏜 화살로 도리어 악인들을 상하게 만듭니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직접 막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오히려 직접 하나님이 적절한 시간에 반격을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들리는 억울한 말에 일일이 반응하며 상처 입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로부터 내 마음의 평강을 유지시키는 비결입니다.  

 

셋째 단계는 나의 시선을 더 이상 아픔을 준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 피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합니다.’ 주께 피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시 주님은 악한 사람들을 향해 즉각적인 심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화살을 쏜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쏜 화살에 ‘갑자기’ (홀연히)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지연되지 않고 전혀 예상 하지 못하게 임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5절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누가 보리요?’ 라고 장담했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셨고 그들의 죄에 대해 반드시 징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도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좋은 말을 내 입술에 두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타인을 향한 비방이나 험담, 근거 없는 소문은 대부분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당황스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들과 다른 좋은 말을 평소에 입술에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분의 입장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니 추측해서 말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듣기 보다는 나중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면 어떨까요? 지금은 그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 101:5절을 보면,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하도록 훈련하고 힘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은 그 사람이 받기에 합당하면 그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한 축복이 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마 7: 2절에서,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 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을 해롭게 하는 독을 담은 말보다는 아름다운 말을 입술에 두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