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14): 땅 부자 vs 하늘 부자  

시 49: 1, 5-8, 12, 14, 16-17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돈은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하나님과 사람보다 더 우선순위에 둔다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맘몬 신에게 붙잡혀 살아갑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번 재물들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다 남겨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세상 만물 중에서 존귀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재물만 좇다가 12절 말씀처럼 멸망하는 짐승처럼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돈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죽음 이후에 인생 역전이 일어나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14절에 언급되는 ‘아침’은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일상의 아침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마감한 후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뜬 첫 날입니다. 또 ‘정직한 자들’은 자신이 가진 부를 방패 삼아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에 의해 압박과 핍박을 당하던 사람들입니다.

 

5절에 의하면, 이들은 불의한 부자들에게 압박을 당할 때,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요”라고 담대하게 말하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직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오히려 이들이 자신들을 핍박하던 부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똑같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냐고 말할 것입니다. 단지 위치만 바뀌는 것이 아니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이 땅에서 돈을 가지고 군림하고 약한 자들을 힘들게 하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악이 없는 곳입니다. 욕심이 지배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당한 것을 분풀이 하는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닙니다. 다스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악한 부자들이 이 땅에서 자랑하던 부귀는 더 이상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사망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가는 곳은 영원한 벌이 있는 ‘스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가 그들을 종으로 삼아 부리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이 세상이 움직이지 않아 괴로워하던 시간이 지나갑니다. 아픔과 눈물이 없고 하나님의 공의만이 철저히 실행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다스림이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누릴 행복입니다.    

 

둘째, 16절 말씀처럼, 사람이 치부하여 영광이 더해 가는 것에 시험들지 말아야 합니다. 부러움은 욕심을 자라나게 하고, 욕심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약 1:15). 악한 것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그들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17절을 보면, 그들의 결말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이 현재뿐이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죽음 이후 영원이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 너머의 시간에서 누가 주인공입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인정해 주십니까?

 

이것이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이 되고 기준이 되면 좋겠습니다. 비록 조금 갖지 못해 서러움과 압박을 당한다고 나중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이 조금 불편해도 다음 시간에는 풍성함과 누림을 기대하며 주신 것을 나누는 부자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재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향한 잘못된 태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물질은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6절을 보면, 더 문제는 성실하게 많이 번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진 물질에 사로잡혀 재물을 의지하고 자랑까지 합니다. 재물의 힘을 신뢰하고 재물이 모든 것을 지켜줄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경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이면 그들은 물질을 소유, 관리, 사용하며 단순한 생활수단의 차원이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돈을 의지하고 찬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모든 세대에 걸쳐 다 있고 심지어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과 관계를 끊고 살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능력이 있어 보이는 돈이 최고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2) 돈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때문입니다. 돈이면 재판도 원하는 대로 굽게 만들고 권력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절대로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어떤 부자도 ‘자기 형제와 심지어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낼 속전을 지불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돈은 생명을 취하는 하나님 앞에서는 무능력할 뿐입니다. 8절은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비싸 영원히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죄로 타락한 인간은 죽으면 영벌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땅에서 돈에 노예가 되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돈을 가지고 자랑하며 잘못 사용하다 하늘 나라에서 인생 역전이 일어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신 것에 만족하고 더 주신 것을 나누고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지혜로운 청지기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