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12): 세상 정치 vs 하나님의 통치
시 47: 1-2, 4, 6-9
세상의 영웅들 중에는 넓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이루어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고해서 세운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떨까요? 오늘은 세상 임금들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는 성도의 삶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세상 임금은 자기가 차지한 땅만 다스리지만, 하나님은 온 땅과 민족들과 나라들을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2절처럼, 하나님은 ‘온 땅에 큰 왕’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특정 민족과 한 나라에 국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방을
다스리는 위대함이 온 땅을 덮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2절에 ‘지존’이란 말이 나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우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합당한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땅뿐 아니라 온 우주로 확장됨을
나타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보는 우리들은 1절처럼
온 힘을 다해 기뻐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야 합니다.
감사하게 오늘부터 청년들이 봉헌을
드리는 예배 순서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가 경배자가 되어 6절처럼 찬송하고 찬송하고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찬송이란 말 앞에는 성령에 감동되어, 손을 들고, 춤추며, 여러 악기로 등 다양한 경배의 모습이 있는 역동적인 예배입니다.
여기서 꼭 묵상할 것은 7절에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라는 말씀입니다. 왜 지혜의 시일까요? 하나님 앞에 인간의 감정적인 흥분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깊이 깨닫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시로 찬양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는 분별력 있는
예배를 뜻합니다.
성도는 내 감정과 상관 없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왕이시다’라는 변함없는 진리를 인정하며, 묵묵히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감정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과해서 순종의 열매로 나아가는 예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는 1절처럼 손뼉치고 외치는 뜨거운 감정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7절의 지혜의 시를 거쳐, 9절의 열방의 고관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처럼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아니라, 세상
밖에 까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빛 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둘째, 세상 권력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백성의 것을 뺏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해 섬기는 통치자입니다. 4절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는 세상 왕과는 다릅니다. 이기적인 세상 임금의 통치와 달리,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은혜를 베풀며 섬기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4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녀를 위한 진정한 섬김은 ‘기업을 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업은 가나안 땅입니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기업은 십자가 구원을 통해, 천국을 소유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하나뿐인 죄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섬김입니다. .
4절을 다시 보면, ‘사랑하신
야곱은’이라는 표현에서 그가 잘나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조건 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세상 왕은 쓸모 있고 강한 자들을 좋아하지만,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은 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함께 밥을 먹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인인 예수님의 섬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공중 권세를 잡아
세상에서 잠시 왕 노릇 하는 사탄은 어떻습니까? 어둠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거짓으로 속입니다. 자신의 종으로 삼아 결국 심판과 함께 영원한 사망으로 함께 끌고 들어 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는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 권력은 인간의 반역과 무력으로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십니다. 9절에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방패(히: 힘있는
자들)는 왕들(NIV)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은 모두가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무너뜨릴 피조물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앉는 자리를 8절에서 ‘거룩한 보좌’라고 부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임재로
죄가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보좌에 앉을 분은 오직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존재 자체에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세상
시작부터 모든 피조물들의 행위를 다 기록한 증거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만이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 앞에 우리는 2절처럼,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요? 사람의 마음과 생각조차 감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것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두렵게 살면(‘경외’) 좋겠습니다.
만물을 통치하는 하나님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기 원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다스림을 받는 성도는 세상에서 빛으로 신실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경외함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