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11): 보호소 vs 피난처   

46: 1-5

 


전쟁과 자연재해가 생길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보호소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에게는 사람이 주는 보호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는 영적 피난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의 피난처가 되어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실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피난처를 가진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위험이 닥치면 사람이 만든 보호소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과 위협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피난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정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행복 중의 하나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실제 살아가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자신감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 46:2절을 보십시오. 세상의 기초인 땅과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는 엄청난 대재앙이 자신 앞에 일어납니다. 또 시 46: 3절과 같은 바닷물이 솟아나는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피난처에 거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의 모습을 시 46:4절에서는 너무나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내로 표현합니다. 지진과 해일 같은 엄청난 외적 두려움과 염려라는 현실 앞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 흐르는 안전과 기쁨을 바라 보라고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예수 믿는 성도들 속에 있는 평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성도가 기도할 때 배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의 강을 맛보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 46:10절에서 너희는 가만이 있어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평강을 얻는 법을 소개합니다. 불안하면 이것 저것 분주해지고 뭔가를 하려는 사람에게 먼저 할 것은 모든 주권을 가진 하나님의 일하심을 잠잠히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일하는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일을 소리 내어 묻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먼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 시간에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기도 중에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는 모습(하나님의 뜻)을 기도 가운데 보고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기도라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앞서가며 나를 위해 하실 일을 바라보며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1:1절에 의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내 마음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기도가 어렵고 자리에 함께 하기 힘듭니다. 지루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능력을 신뢰하지 않으면, 사람이 없다, 시간과 물질이 부족하다, 이런 환경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문제 일뿐 하나님의 걱정과 염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뭔가가 부족해서 걱정한 적이 있던가요? 또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할 수 있는 존재는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엘로힘이라는 우주의 창조자 되시며 최고의 통치자 되는 하나님의 신명을 시 46:1절에서 사용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시편 기자는 자신이 응답 받았던 기도의 시간까지도 알려 줍니다. 46:5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를 도왔던 시간이 구체적으로 새벽이라고 말합니다. 점심도 저녁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새벽일까요?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속에서는 해가질 때 귀신이 문을 열고 나와 심야와 새벽에 활동이 극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침이 되어 태양이 떠오름을 알리는 신호가 닭 울음소리라고 합니다. 귀신들은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이 시간을 기점으로 활동을 멈추고 어둠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어둠의 마지막 시간이 새벽입니다.

 

32:26절을 보면, 야곱도 새벽에 응답 받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사탄이 옭아맨 사슬에 끌려 다닐 뿐입니다. 새벽은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간입니다. 악의 세력이 설치고 주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있는 이때 응답하고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새벽을 단지 상징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입니다.

 

세상의 대피소는 비 바람과 같은 일시적인 위험으로 피하는 곳입니다. 보호소 자체가 사람들을 근원적으로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을 멈추게 하거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보호소에는 연약한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피난처는 다릅니다. 46:5절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환란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십니다. 죽을 것 같은 어둠과 고독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온전히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놀라운 평강입니다. 보호소가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는 피난처에서 이 평강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