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9): 인간 vs 하나님  

44: 1-3

 


개강 한지 한 주가 지나갑니다. 다들 학교 생활에 조금은 익숙해지기를 바랍니다. 많은 행사들에서 신입생 여러분들을 반겨줄 것입니다. 이 시간들이 지나면 바로 강하고 매서운 바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타카는 강한 멘탈도 흔들리게 하는 곳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모든 것이 무너지질 때 나를 세워주는 힘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도 부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 있다면 이곳에서 갖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닌 구원 받은 후 성도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해 가져야만 하는 온전한 믿음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첫째,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하심을 믿으십시오. 특별히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복을 주는 일에 과거나 현재나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 문제에서 넘어지지 않고 든든히 설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1절에서 과거로 돌아갑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들의 조상들을 돌보셨는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주신 땅에서 뿌리 내리고 번성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민족들을 괴롭게 해서라도 떠나게 만드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보며 왜 그렇게 하느냐고 따집니다.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은 장차 다가올 세상 심판에 대해 미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현장학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얼마나 심판이 단호한가를 상세히 알게 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의인들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심판하는 기준은 단지 악인의 수가 많기 보다 그 땅을 유지해 갈 의인의 수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 땅의 주의 자녀들이 보호받고 번성하여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향해 복 주기를 원하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 인간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 주고 싶고, 아픈 사람들을 보면 고쳐주고 싶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늘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 한계를 3절에서 시인은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구원함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채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오른 손과 팔과 주의 얼굴 빛입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또 그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사망의 종 노릇하는 우리들을 크신 팔을 펼치사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배은망덕하게 다시 돌아섭니다.

 

놀라게도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향해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4가지 얼굴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은혜, 긍휼, 사랑과 은택입니다. 지금부터 이것들을 자세히 나누려 합니다.

 

1) 6:8절을 보면 은혜가 나옵니다. 온 세상이 심판을 면치 못할 타락한 상황에서 노아만 구원 받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은혜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은혜’(, favor)는 자격이 없음에도 눈길을 주시고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의미합니다. 이 첫사랑의 감격을 늘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입니다. 구원 받은 노아 후손들은 나라와 민족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멀리하다 칼과 기근과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 믿고 구원 받고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살면서 실수와 허물과 죄로 고통을 당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2) 49:15절을 보면, ‘긍휼히 여기다는 말씀을 봅니다. 여기 긍휼은 (단수명사: 레헴, 자궁, . 복수명사: 라하밈, compassion)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 받는 것을 볼 때, 하나님 역시 깊은 감정적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느끼고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 슬퍼하고 눈물짓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위로하기 위해 가까이 와 주십니다. 나의 고통에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힘을 얻기 원합니다.

 

3) 이런 사랑을 받으면 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어져 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106:4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녀들과 맺은 언약 때문에 다시 우리를 회복시키며 신실한 사랑을 베풉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이 갖는 끝없는 사랑인 인자(개역, endless love), ‘헤세드입니다, NIV: great love. ESV: steadfast love(변함없는). KJV: mercies.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이 영원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103:2절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용서, 치유, 만족, 보호, 공급이라는 정말로 구체적이고 세밀한 배려가 일생을 통해 허락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은택(게물, benefits)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 평생 동안 책임지십니다. 그래서 평생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하나님 사랑은 무조건적인 은혜()로 다가 오십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나에게 다가와 고통을 함께 하는 긍휼(라하밈)이 풍성합니다. 언약을 기억하며 끝없는 사랑(헤세드)을 가장 힘들 때베푸십니다. 게다가 필요에 따라 구체적으로 채워주시는 혜택을(게물)을 평생토록 허락하십니다. 이 사랑 다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