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6): 가난vs 돕는 자 

41: 1-4

 


주변에 참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압니다. 특별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안 되었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왜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있어야 되고 그에 맞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시스템은 구제와 봉사라는 영역에서 교회가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남선교회가 조직되고 성도님들과 협력하여 추진해 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영구적인 시스템을 오래 전부터 마련해 두었습니다.

 

19:9절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과 거류민들을 위해 추수시기에 밭 모퉁이에 일부를 남겨 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게 했습니다. 19:10절을 보면, 과일도 일부를 남겨 두고 떨어진 것을 그대로 두게 했습니다. 14: 28-29절에서는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십일조를 매 3년마다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된 사람들을 왜 우리가 책임 지고 도와야 하는가? 국가가 책임질 일을 왜 감당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 ‘마음은 있지만 나도 부족해서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미루는 분도 있습니다. 또 하다가 중단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에 도와 준 경험이 있는데 도대체 그 돈이 잘 사용되는지 의심이 가서 더 이상 안 하고 있어요.’ 도와야 되는 것은 머리로는 알지만 계속 못하고 있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바쁜 삶에 밀려 남들 돕는 것 묻어 버립니다. 게다가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몰라 생각은 있지만 마음으로만 끝나 버리곤 합니다. 결론은 안 하거나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도는 말씀에 근거하여 왜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느냐에 대한 신앙관이 필요합니다.

 

첫째,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내가 당할 위기나 재난 때 보호받는 담보가 됩니다. 41:1절에 의하면, 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어려움(재앙)에서 건짐을 받는 복이 있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불의의 사고를 위해 보험을 듭니다. 사실 보험도 불가항력적 재해나 재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잘못이든 타인의 실수든 아니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할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 포기와 실망과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세상 권력의 횡포와 억압으로 고통 당하는 비참한 처지에서 나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보장된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번영하고 행복합니다. 41:2절에 ‘지켜 주신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의미는 삶의 전 영역을 살피고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과 만족할만한 공급함을 받으며 충만하게 살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시고 가장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 입니다. 주님은 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모함이나 공격 그리고 영적으로 사탄의 악한 의도대로 되지 않게 강력한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가난한 사람을 보살피며 살 때 전 방위적 보호와 충족함이 있음을 믿기 원합니다.

 

셋째, 육체적 질병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도왔던 나의 손길을 기억해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은혜로 죽을 것 같은 질병에서 치유 받았던 경험을 간증으로 시 41:3절에서 들려 줍니다. ‘왜 나는 아니야?’가 아니라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하늘의 창고에 얼마나 보화를 쌓아 두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하고 배부르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도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를 진정 어려운 재앙에서 건져낼 보물도 하늘에 쌓아두는 지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분명 말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랑이 식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정말 가난한 자들을 돕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람은 어려운 부탁을 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기 쉽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행위 자체가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궁핍한 약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 받기를 요청하는 간구가 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잠 19:17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41:4절에서 다윗은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 삼상 22:2다윗-환난, 빚진 자, 원통한자.

 

이 땅에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은 도울 것을 약속하십니다. 힘들고 아파하고 소외되고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주며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들이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위기를 당할 때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청구서를 발행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