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5): 웅덩이vs 바위 

40: 1-9

 


인생에 꽃 길만 있으면 살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힘든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웅덩이와 수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수량이 적은 유다 산지 사람들은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모아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런 웅덩이가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진흙과 섞여 수렁처럼 됩니다.

 

일단 이곳에 빠지면 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2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어려워 웅덩이에 빠진 것에 비유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죽을 것 같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바위 위로 옮기는 구원이 있기까지 하나님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려 합니다. 

 

첫째,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1절을 보면, 다윗은 응답이 있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것이 없도록 미리 좀 알려 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고 없이 고난을 주고 심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대홍수 심판에도 노아의 조상 때부터 계속 경고해 주었습니다. 왕상 9:2절에 의하면, 솔로몬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할 때 그에게 꿈으로 두 번이나 나타나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세상 마지막 때 주어질 심판 역시 주님의 재림으로 오게 될 것을 지금도 경고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도들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무엇?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종 제사나 예물을 드리는 규정들을 철저히 가르치신 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6절에서 제사나 제물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니 이해가 잘 안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신앙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섬긴다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일상에서는 기도도 말씀도 없이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거짓된 나를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는 나의 삶을 되돌아 보기 바라십니다

 

7절을 보면, 다윗은 이런 거짓된 삶이 되지 않기를 고백합니다. ‘주가 진정 원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거짓없이 하나님께 예배자로 나오는 성도는 8절처럼 말씀을 마음에 둡니다. 말씀과 행함이 분리 없이 즐거이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진정 우리에게서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읽어야겠지요. 그리고 매일 말씀을 읽는 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지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묵상이 삶의 중심에 자리 잡히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고 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된 성도’로 인정받을 줄 믿습니다

 

둘째, 기도 응답이 있기까지 하나님은 새 노래로 찬송하기를 원합니다3절의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찬양 거리를 주셨으므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사건은 하나님께 올려 드릴 새 찬송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3가지 새 노래가 늘 있습니다.

 

1)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감격을 매 순간 찬양하는 새 노래입니다. 찬양팀이나 성도님들 새 노래에 대해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2) 5절처럼 우리는 살면서 위기마다 주께서 행하신 기적과 우리를 향하신 생각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압니다.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새 노래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아야 되겠지만, 알게 모르게 짓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용서 받는 즐거움이 우리의 새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 만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임을 영광 받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결단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뇌물과 같은 거래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행할 서원 같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한나의 경우, 단지 자식이 없어 자식만 주면 평생 아들을 하나님께 받치겠다는 단순한 결단이 아닙니다.

 

당시 엘리 제사장 아들들은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성들과 성적인 범죄까지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일도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우리 역시 시대의 영적 상황을 보며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행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단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기를 원하는 결단만 받아 주십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에게 입술을 열어 구원을 선포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결단을 진정으로 이 세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주인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응답이 있기까지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도록 기다리게 합니다. 응답 후에는 영광 받도록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도록 결단을 요구합니다. 세상은 수렁에 빠뜨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반석 위로 끌어 올립니다. 기다리고 찬양하고 결단하는 분에게 구원의 기도 응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