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2): 헛됨 vs참됨
시 24:1-6
오늘은 좀 색다른 두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창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외계인에 관한 것입니다. 본론부터
말하면 어떤 것이든지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4절 말씀처럼, ‘마음에 허탄하고 허무한 것들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참된 하나님 말씀을 더 잘 알고 확실히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창조주’ 로 믿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1절을 보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는 고백이 있습니다. 다윗은 과학자도 아닙니다. 3천 년 전에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진화론을 알지 못한 시대의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것은 창세기
말씀 때문입니다. ‘계시’ 즉 ‘보여주심’ 때문입니다. 사람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알려주고 보여주지 않았다면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느냐 조차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말씀과 비슷한 주장이 있습니다(유신진화론/진화창조론). 하나님이 태고의 단순함에서 현재의 복잡성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진화를 수용하면서 신앙과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입니다. 한가지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생명체를 지금 모습대로 직접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도와 독특한 생각들을
만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해석이 부족할지라도 어떤 과학적 주장에도 위협받지
않습니다. 말씀만 진리로 믿고 붙잡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외계인이 아닌 인간을 구원하려 예수를
구원자로 보낸 것이 참된 진리입니다. 요즘 우주시대를 살다 보니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X-파일이 있다고까지 합니다. 고대의 거대 유적(피라미드), 시대를 앞서간 유물들,
벽화 속의 형상들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긴 흔적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구를 포함한 8개의 행성으로 이루어진 태양계(Solar system) 는 태양과
같은 별을 2-4천억 개나 갖고 있는 은하계(Galaxy)에
비하면 너무 작습니다. 또 우주는 (Universe) 약 2조개 이상 우리 은하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을 수 있고, 외계인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각종 의문들이 생기고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방대한 우주에서 인간이 사는 지구에 온통 관심을 쏟으십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살아나셨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외계인은 아담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공유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을 위한 십자가 복음과는 무관합니다. 게다가 예수님 역시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으로 성육신하고 죽으시고 부활을 수 없이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히 10:10절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단번에(Once for all)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단 한번의 대속’의 진리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또 예수님의 지상명령도 ‘땅끝’은
지구의 인류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외계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에는 침묵합니다.
그래서 독특한 해석들이 있지만, 성도가 우선으로 붙잡아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진리는 ‘그럴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추측컨데’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진리’라고 독설적이고 배타적인 언어로 선포됩니다. 우리 마음을 뺏는 것이 아니라 목숨처럼 여겨야 할 복음에 관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합리적, 과학적, 신학적인 화려한 해석들 보다 말씀을 더 위에 두는 것이
참된 생각입니다. 성경이 말해 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일단 궁금합니다.
게다가 주변에 너무 다양한 생각들이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생각을 자신의 SNS를
통해 마음껏 표현하는 세대들입니다.
이때일수록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의 다양성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만, 말씀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는 것을 신앙으로 간직해야 합니다. ‘생각을 허탄한 것에 두지 않는’ 사람이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또 성도가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특별히 5절을 보면, ‘복
받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는
‘옳다’ ‘죄 없음’입니다. ‘의’는 성도와 하나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규범적인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도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마음대로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해석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말하는 ‘의’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어 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만 진리로
믿고 따라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