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 있는 믿음(7): 썩고 좀 먹을 것을 쌓지 마십시오
약 5:1-5
개인적인 바램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마지막 종말의 때’라는 것을 알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1) ‘마지막’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 더 나아가 우리가 성도라면,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어떤 삶인가를
한 번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보다 앞서 ‘말세’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야고보를 통해 보려고 합니다. 3절을 보면, 야고보는 ‘너희가
말세를 살면서 잘못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리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금과 은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가치로 여기고 재물을 쌓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큰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수고해서 모은 금과 은이 녹이 슬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금과
은이 녹이 쓸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1)
열심으로 쌓아둔 것들이 나중에 가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재물을 허락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게 사용했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2절을 보면, ‘재물을
쌓아 둔 결과 썩거나 좀이 먹게 되었다’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이것은
주인의 것을 맡은 청지기들이 제대로 물질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질책입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돕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늘의 자산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모아두지 않고 부족한 곳으로
흘러 가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도들까지도
그렇게 온전히 살지 못했습니다. 5절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게도
어려운 이웃의 필요를 외면한 체 자신의 사치와 방탕에 빠지게 됩니다. 특별히 야고보는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마음이 살진’ 삶이라 말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4절은 그 민낯을 드러내 줍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신이 이득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이 됨을 경고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삶은 남의 것마저 빼앗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나눔과 섬김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언급되는 ‘부한
자’는 단순히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쌓아둔 것들이 녹이 슬고 좀이 먹은 것을 보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눅 16:23절에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쾌락만을 위해
매일 파티로 살아갑니다(눅 16:19절). 그러나 그는 죽은 후 음부의 불꽃 가운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눅
16:24절).
결국 성도들에게 올바른 시대관과 물질관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 모든 것을 심판하는 마지막 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청지기의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돕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쓰도록 주신 것을
나누지 못해 남는 것은 쓸모 없게 됩니다. 쌓아 두었다 녹슨 것은 이 땅에서 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히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꾸지람 듣는 일은 너무나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둘째,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눅 16:21절에 나오는 부자는 거지 나사로가 매일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개가 그의 상처를 핥는 것도 보았지만 외면했습니다. 늘 좋은 옷만 입고 날마다 왕처럼 즐기며 사치스럽게만 살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이 땅에서 즐기는 사치와 쾌락이 마음을 너무 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떤 운동이든 너무 오래 쉬면 감각을 잃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너무 길게 구제와 봉사의 자리를 떠나면 안됩니다. 사람들의 가난과 아픔을 감지하는
감각이 늘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2026년 단기 선교 바자회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은
비행기 티켓 비용을 대신 내 주는 청년들과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 동안
과테말라 단기선교를 해 왔습니다. 따빌라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의 사랑을 나누는 일들을 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다리를 놓고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도전을 우리 선교팀이
받고 돌아올 것을 기대합니다. 선교팀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는 카오바 마을에는 초등학교만 있습니다. 더 배우고 싶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다른 지역에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학생들을 돕는 캐나다 출신의 연로한 선교사 부부가 계십니다.
일년 학비 500달러를 내지 못하는 100명 이상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모아 후원하는 분들입니다. 가능하면 이 선교사님 부부를 단기 선교팀에게 꼭 소개해 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책임지고 살아갈 청년들이 청지기적 물질관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예배 드릴 건물이 필요하고 자녀들과 캠퍼스 사역을 위해 많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먼 땅끝까지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 위해 나누는 사람들이 더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