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 있는 믿음(5): 위로부터 난 지혜로 행하십시오
약 3:15-17
지난 주에는 약 3:16절을 통해, 시기, 다툼, 혼란, 모든 악한 일을 하는 세상 지혜를 믿음생활에서 멈출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 알고 행함이 삶 속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약 3:17절은 하나님께로 난 지혜의 8가지 특성을 말해 줍니다. 첫째, 성결. 둘째, 화평. 셋째, 이해심이 많고 친절한 마음인 관용입니다.
넷째, 양순으로, 고집 세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유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째, 긍휼입니다. 도움이 필요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해 형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긍휼의 결과로 나타나는 선한 열매인 구제를 말합니다. 일곱째, 늘 공정함을 잃지 않도록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 거짓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란 의미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참 지혜의 8가지 특성을 다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시점에서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해 묵상 해 볼 수 있는 두 가지만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성결입니다. 순결, pure로
번역됩니다. 부정한 것으로 더럽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공생애의 마지막 즘에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죽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길마저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갑니다.
잡히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자신을 숨기고 도망칠 기회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잡히고 고난 당할 것을 염려해서 자기를 드러냅니다. 세상적 지혜로 위기를 모면 하지 않고, 십자가 위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다른 어떤 것이 들어 올 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순수함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 되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영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약삭빠르게 처신하고 손해는 일도 안 보려고 하는 것이 세상 지혜입니다. 성도는
세상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참 지혜가 주는 복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인 성결을
지키려고 하면 예수님처럼 어려운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른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 소명 주셨는데 어떤 것과 타협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하늘의
지혜인 성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늘의 복이 예비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요삼 1:2).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주는 복은
먼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해주는 영혼이 잘 되는 복입니다. 다음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범사가 형통하는 복입니다. 마지막 복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육신의 강건함을 허락해 주십니다.
다음으로 나눌 것은 화평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살면서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어떤 관계에서든 다툼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싸움이 계속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주장이 강하고 손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화평은 자기 손해가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 조금
들어도, ‘아직 믿음이 없어서, 믿음의 경륜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이해하며 화평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주 안에서
믿음의 고백이 하나 되야 합니다. 또 주님이 원하는 일도 함께해야 합니다. ‘저 분은 우리교회 성도인데 함께하는 것에는 다 예외야?’ 이런
말은 들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는 희생의 본보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어 죄로 인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십자가의 자기 희생을 배우고
실천해야만 참된 지혜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이미
예수님이 마 5:9절에서 팔복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예수 믿는 사람) 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2:18절에서 ‘할 수 있거든 너희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진정 화평을 추구하는 의지가
있는지요?
대부분 성도들은 조금 머물다
떠나기에 시간만 가면 되는 것입니까? 화평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희생해서라도 나와 이웃이 화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만 아니라 실제로 행하는 것이 따라야 합니다. 내가 먼저 가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고,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힘든 기도 제목을 듣고, 함께하는 기도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지식의 소유자로
인정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할 수 있어 화평을 만드는 참 지혜의 사람으로도
인정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여전히 세상적 지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온전히 나의 구원자로 믿고 입술로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한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들을 가지고 선한 행함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