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제직(3): 나눔을 실천하십시오  

1:22-25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동의 하고 받아들이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타인의 생명을 헤치는 것을 금하는 생명 존중 사상이 있습니다. 법과 도덕의 기초가 되는 강력한 합의 사항입니다. 또 잘못에 대한 책임과 치우치지 않으려는 정의와 공정에 대한 갈망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반드시 자비로운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행합일을 수행 과정으로 삼습니다. 성경 역시 신앙적 지식은 삶으로 나타날 것을 야고보서에서 강조합니다. 먼저 야고보가 주장하는 행함 있는 믿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고 가면 좋겠습니다.  

 

7:21절에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잘못 오해해서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라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원 받은 믿음은 반드시 말씀대로 사는 행위로 증명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본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행함은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성도의 삶에서 그대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몇 주 동안 우리의 나누는 삶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좀더 예수님으로 직접 배우고 들었던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던 야고보의 가르침을 오늘은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야고보는 약 1:22절에서 말씀을 듣기만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경고합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말씀을 남들보다 더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때 성도는 많이 아는 것이 자신의 영적인 성숙도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태도를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을 믿음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매일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에 참가하는 성실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경건한 사람입니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는 것이 믿음이라는 이런 잘못된 논리는 참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오류를 맞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야고보가 말하는 자기기만의 핵심입니다. ‘신앙의 본질가난한 이웃을 도우라는 명령을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 듣고 성경공부를 통해 배워 듣고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게 있는 것이 부족할지라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웃들에게 실제로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데 까지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은 실행하지 않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그 자체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신앙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행함이 없으면 실제로는 영적 침체 상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착각에 빠지는 모습을 두 구절에서 이렇게 비유합니다. 23절을 보면 한 사람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서 고칠 부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24절에 의하면, 그는 돌아서면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으로 비유합니다. 거울은 우리 자신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깊은 상태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허물과 죄성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 앞에서 매일 매 주일 고칠 부분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서면 곧 잊어 버립니다. 말씀은 늘 우리 자신의 영혼 상태에 대한 깨달음을 줍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진짜 엉망인 상태를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고의로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구원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예수 믿기 전 죄의 습관들을 벗어 버리고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 역시 예수 믿고 많은 변화들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들은 대개 나 자신을 위한 변화라면,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에 대한 변화 역시 요구하십니다.  

 

결국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자기 속임에서 벗어나는 오직 한 비결은 말씀을 듣고 일어나 행동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실천 없는 신앙은 열매 맺지 못하는 죽은 신앙입니다. 본질이 사라진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불행한 종교인입니다. 진정한 신앙을 추구한다면 이제는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25절에서 아는 것과 행함의 관계를 복과 연결시켜 줍니다. 성도가 복 받는 조건은 행함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은 행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삶은 구원 받은 자녀들이 허락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처럼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응답 받는 복은 몇 %인지 기도 노트를 가지고 매년 계산해 보고 있으신지요? 야고보는 말씀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라고 명확한 아버지의 뜻을 전달합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은 복의 시작일뿐입니다. 복이 실제 우리 손에 잡히는 지점은 행함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성도의 신앙에 있어 앎과 행함은 하나입니다. 행함 없는 신앙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나누라는 주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살아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