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3): 미래를 보장해 주심에 감사
민24: 2-6, 9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궁금하고
또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미래입니다. 나의 앞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미래에 대해 알기를 원해 많은 복채를 들고 미래를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점쟁이’ 또는
거창하게 ‘미래 예언가’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은 예수 믿고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기도 응답 받는 많은 복들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엄청난 복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난 뒤 죽기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수 믿고 난 뒤 성도의 미래는 그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것 좀 나누려고 합니다. 2절을 보면, 복술가 발람이 광야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볼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4절에서는 그는 또 환상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5절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번역은
이 점을 고려하여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이스라엘아, 너의 사는 곳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로 번역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처럼,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성도에게는 아름다운 미래가 허락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사탄의 지배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 10:10절을 보면, 사탄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도둑질하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고, 영원한 멸망으로 우리를 끌고 가려 합니다. 이쯤
하면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힘든 일은 계속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조폭에게 잡혀 쇠사슬에 묶여
살다 해방 되었다고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섬에서 나오기 위해 배를 타고 나옵니다. 험한 폭풍, 배고픔, 시간이
지연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살면서 자녀들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주는 징계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한 자유가 주는 기쁨에 비길 수 없습니다.
발람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며 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후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토브)입니다. 가나안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 예수 믿고 죽기까지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축복은 사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성도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는 죽기 전까지 누리게 될 이런 복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까요? 3절을 보면, 발람은
자신을 눈을 감았던 자로, 4절에서는 눈을 뜬 자로 표현합니다. 육의
눈은 감기고 영의 눈이 열려야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말씀은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2절을 보면, 이방인
복술가에게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됩니다. 성령 임재를 체험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나신 구원자이며, 나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가 이제부터 내 인생의 주인임을
입으로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진정으로 마음으로 믿고 따라 살면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리는 다른 비결은
4절에서 ‘엎드려 눈을 뜬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엎드림’은
겸손과 순종을 말합니다. ‘순종’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내 힘 내 돈 능력으로 살지!’ 라고 생각했던 교만을 내려놓고, ‘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라고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나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해당되는 성도의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은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믿으시는지요? 답은 해야겠는데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래에 대한 증거가
좀 필요합니다. 본문 6-9절에서 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말씀 드리려 합니다.
성도의 밝은 미래에 대한 첫 증거는 6절 상반부의 ‘강가의 동산’입니다. 동산은 야산이 아니라 울타리로 보호 받는 과수원입니다. 그것도 물이
마르지 않는 강가의 동산은 성도의 번영과 풍요, 세상에서 평강으로 가득 찬 여유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느끼는 것입니다. 그때 성도는
태초의 에덴을 맛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환상에서 깨어 다시 지옥 같은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사는 현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 갈증이 있는 세상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으로 나와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는 삶입니다.
두 번째 증거는 6절 하반부에 여호와가 심은 침향목과 백향목입니다. 이 귀한 나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잘 자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었습니다. 힘든 환경에도 은혜를 주어 하나님 영광 드러나게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마지막 증거는 9절에 언급되는 사자입니다. 사자도 때로는 무기력함과 배고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강하고 담대함으로 결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타카라는 이곳에 우리를 심은 주를 보며 힘 내기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를 믿고 난 뒤 죽기 전까지 성도가 누리게 되는 멋진 미래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살면서 찾아오는 고난보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향해 평강과 은혜와 승리를 우리 앞에 펼쳐 놓으셨습니다. 이 복들을 소망하며 진정으로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