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1): 복을 받은 사람
민 22:1-3, 5-6, 12
감사의 달 11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어가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옛날 시골에 다리가 없던 시절에 시내를 건널 때 돌을 놓아 건너 갑니다. 너무 간격이
멀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 돌을 놓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님들은 감사를 생활화하여 주시는
복을 이어가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매일 주시는 만나와 먹을 물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그
외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받은 복들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그 복들이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흘러 내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감사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첫째, 민 22:1절처럼
이스라엘은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해 더 가까이 가는 복의 사람들입니다. 성도 역시 언젠가는 인생의 종착지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복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서로 살면서 네가 맞다 틀리다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나중 만나
영원을 함께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을 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는 의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적절한 메를 드십니다. 히 12: 6절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어 히 12:7절에는.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인생살이
가운데 하나님의 징계는 분명 지만, 성도들에게는 눈물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생의 종착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복을 함께 즐거워하고, 감사의 제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광야에서 군대도 없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나라가
있듯이, 성도가 하나님을 믿을 때 돈이 없어도 높은 지위가 없어도 세상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이
엄청난 큰 복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 도착합니다. 2절을 보면,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자신들보다 강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이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3절에 의하면, 이것을
본 모압 왕 발락은 자신들도 아모리 왕들처럼 멸망 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또 많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은 앞 장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고 서원하며 주변 나라들과(네겝에서
가나안 아랏 왕,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 전투에서
승리하자, 발락 왕은 점점 두려움이 커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정반대인
모습이 있습니다. 사울 왕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든든히 계심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해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때 어린 목동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 승리하게 되고 오히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성도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는 시대입니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교회는 세상보다
구제와 봉사 사랑의 행위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당당히 세상에 주장해야 할 창조주
하나님, 예수 십자가 구원, 재림과 심판이 있다는 진리를
제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크리스천임을 감추고 움츠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면서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구원도 받아야 하지만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하며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저주가 먹히지 않는 민족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저주를 벗어나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모압으로 접근하자 발락 왕은 약 650 Km 떨어진 유프라데스 유역의 브올까지 사신을 보냅니다. 유명한 발람이라는 복술가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합니다.
발락은 엄청난 복채를 들여 2번 만에 발람을 데려옵니다. 또4번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시도합니다. 모두 실패합니다.
12절을 보면, 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징계는 허락하지만, 저주의 대상은 아님을 확실히 하는 장면입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자녀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입에 어떤 저주의
말도 주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합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 역시 예수의 보혈로 저주가 사라진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정하든 안 하든 마 25:41절에
의하면,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저주 받은 자들’입니다. 또 요일 3:10절은
‘마귀의 자녀들’이라 말합니다.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의 사슬이 끊어진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드릴 때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사망의 늪을 떠나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받는 하나님의 복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어둠과 좌절이 사라지고 늘 기쁨과 소망에 찬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후 4:8-9절은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복을 지금 누리고
있는 사람이 예수 믿는 성도라는 사실을 믿고 넘치는 감사가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