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동행(9): 주님이 주인공입니다

20:1-3, 7-8, 11-12

 

전에 실수를 해 본 적이 있는 장소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드는 지요? 자동차 티켓을 받았던 장소에 가면 왠지 조금 긴장과 함께 더 조심하는 마음이 듭니다. 20:1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게 됩니다. 38년 전에 가나안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그곳에서 정탐꾼을 보냈지만 돌아온 후 하나님께 반역했던 곳입니다.

 

그 일로 긴 시간을 광야에서 방랑하다 다시 이곳에 재집결한 것입니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공교롭게도 그때 그곳에 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데스는 샘이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는 때에 가축은 물론 사람들이 먹을 물조차 말랐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의도적인 시험인 것처럼 보입니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모여듭니다. 그들은 38년의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성숙된 신앙을 소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은 과연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동행하기를 원하는지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들이 조금이나 변화 되기를 원하십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모세와 다투며 반복되는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38년이라는 상당한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이들은 누구입니까? 1세들이 아니라 2세들입니다. 그래서 광야 1세인 미리암의 죽음을 먼저 언급했던 것입니다.

 

그들 역시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 변화가 왜 중요합니까? 변하지 않으면 은혜가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내가 변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 없이는 은혜는 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변화는 내 의지로 안됩니다. 엎드리면 됩니다. 성령님께 구하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잘 안 변한 것은 성령이 개인 속에 임재 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서로를 보며 나노 분의 일만큼은 변한 것 인정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2절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도대체 무엇을 믿지 못해서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요? 설명은 없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보면, 바위를 치라는 말은 분명히 없습니다. 바위에 명령하여물이 나오게 하라고만 하십니다.

 

모세는 늘 하나님이 말씀하면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계속되는 백성들의 원망으로 자제력을 잃고 분노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다는 말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은 내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변형시켜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불순종은 생명을 죽음으로, 복을 저주로 바꿀만한 심각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사람을 원합니다. 12:3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함을 극찬했습니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11절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칩니다. 이 일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도대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세가 명령대로 하지 않고 한번 바위를 치자 물이 나오지 않게 했던 것 같습니다. 불순종을 알게 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그렇지만 물은 결국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난처해진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위를 쳤는데 물이 안 나오면 모세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망신당하고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처음 바위를 쳐서 물이 안 나오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는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위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을 막는 모습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스스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도록 무조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시간과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그러면 거룩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나를 화나게 만들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마음대로 하지 말기 바랍니다. 성령에 의지하며 하나님이 움직일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 보기 바랍니다.

 

믿음은 순종이며 기다림입니다.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기다리지 못하는 믿음은 우리 인간의 가장 연약한 죄성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모세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주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여야 할 순간에 사고를 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없이 우리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안됩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갑니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갑니다말씀대로 살고 내 의지를 한 박자 죽여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는 동행이 지속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