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동행(7): 드리는 삶   

15:1-3

 


지난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데스 바네아의 불순종 사건으로 40년 광야생활이 시작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 뒤가 궁금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아예 포기한 체 엉망이 되어 살아갈 것으로 상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 15:1-2절을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라고 장차 이루어질 일처럼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이어 그곳에서 드릴 제사와 제물까지도 언급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징계한 후에도 여전히 관심을 갖고 가까이 오시고 관계를 계속 유지해 가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박탈 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들고 나아가는 제사의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줄 것이라는 약속 역시 파기 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결국 제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약속을 유지하고 마침내 이루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할 때 주님이 나를 버리시고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 말기 바랍니다. 오히려 상한 마음을 제물 삼아 은혜를 구하는 예배자의 삶이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구약의 각종 제사가 어떻게 헌금생활과 관련되고 어떤 드림의 삶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첫째, 15:3절에서 번제가 소개 됩니다. 제물 전체를 불에 태워 드리는 화제의 일종입니다. 번제는 나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온전히 드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면서 직분의 자리로 부르심이 있을 때, 내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나아가는 섬김의 모습입니다.

 

또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참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엉망으로 섬기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는 예배자가 될 줄 믿습니다. 번제와 같은 드림은 우리를 혼돈 가운데서 질서로 이끌어 줍니다. 새 마음을 주시어 다시 주님을 섬기도록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서원을 갚는 서원제가 소개됩니다. 살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갚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오늘날 성도들의 경우에서 본다면 본인 스스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작정한 것을 드리는 작정헌금 같은 것이라 말 할 수 있겠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개인이 작정해서 드리는 건축헌금, 선교헌금이 될 것입니다.

 

셋째,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낙헌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출생, , 취업, 결혼, 출산을 기뻐하며 드리는 감사헌금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구절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서원제, 낙헌제 외에 감사제를 합하여 화목제라고 부릅니다.

 

넷째, 정한 절기제입니다. NIV festival offerings로 번역합니다. 매주 안식일과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첫 보리를 거둔 뒤에 지키는 칠칠절, 40년 광야생활을 기억하며 초막을 지어 출애굽을 기념하는 초막절 등이 해당됩니다. 매주 안식일에 드리는 제물은 오늘 날 주일 예배에 개인들이 드리는 주정헌금이라 보면 됩니다.  

 

또 우리 역시 신년,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절기로 정하고 매년 드리는 절기 헌금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각종 헌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가지고 나와 드린 제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왜 하느냐, 종류가 많다는 생각에 앞서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십일조입니다. 다른 곳에서 다루지만 오늘 본문 속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절기제 중에 칠칠절은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립니다. 또 초막절을 수장절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모든 토지 수확을 마치고 감사를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에서 십일조를 간접적으로 언급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십일조의 기원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던 때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4:19-20절에서, 그는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면서 자신을 축복하는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립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합니다. 1) 강요나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드림입니다.

 

2) 조카 롯의 가족의 생명을 살려주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드림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믿기 전에는 사탄의 권세아래 종 노릇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풀려 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탄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을 끊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의 보혈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을 체험한 성도만이 새 생명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합니다. 새롭게 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어 드립니다. 이때부터는 내가 변합니다.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 됩니다. 일용할 양식, 배우자, 자녀, 가족, 교회, 천국 등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드림이 있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을 성도라 부릅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인정하며 드림이 있는 신앙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