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동행(1): 주와 함께 할 사람들
민1:1-2
8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아직은 방학이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신입생들이 찾아오고 교회도 새로운 분들로 채워질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부터 말씀도 새로운 주제로 바뀌게 됩니다. 민수기를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것’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힘들고 지친 삶에 힘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 될 줄 믿습니다.
먼저 출애굽 사건과 관련된 성경책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있습니다. 레위기는 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 생활과 어떻게 세상에서 거룩을
유지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법을 다룹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을 앞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백성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순종할 것을 강조하는 설교 중심의 말씀입니다.
민수기는 출애굽 후 광야에서
삶이 주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출애굽기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와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까지의 광야 초기 사건에 집중합니다. 반면 민수기는 그 이후부터 모세의 설교가 시작되는 신명기 앞까지 광야에서 두 번의 인구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민1: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시내 광야에서 1차 인구조사를 명령합니다. 민 33:38절은 드디어 광야 사십 년이 됨을 알립니다. 민33: 48절에서 이스라엘은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강 가 모압 평지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민26:3-4절에서 하나님은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강 가 모압 평지에서 2차 인구조사를 명령합니다.
구약을 그릭으로 번역한 70인경은(LXX: the Septuagint) 두 번에 걸친 인구조사를
강조하여 ‘숫자들’(아리트모이)이라고 제목을 붙입니다. 영어성경은 그대로 ‘Numbers’로 직역하게 됩니다. 반면 한글 성경은 ‘백성들의 수’로 의역하게 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광야에서’ (쁘미드빠르)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광야 삶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거친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도 역시 세상이라는 험한 광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홍해를 건너는 확실한 구원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민 1:1절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 ‘둘째 해’라고 말합니다. 이 숫자의
의미는 죽음과도 같은 홍해 바다를 건너온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은 뒤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와 앞에는 바다 물에 수장 될 죽음의 문을 열고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광야에서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은 수 없는 기적을 통해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 구름기둥과 추운 밤에 불기둥,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의 기적, 목말라 죽을 것 같을 때 샘물이 솟아나는 등 너무나 많은 기적들이
광야에서는 필요했습니다.
광야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런
기적들은 아무에게나 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홍해와 같은 구원 사건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 역시 홍해의 기적과 같은 구원사건이 있어야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성도에게 홍해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복음을 들을 때 성령은 역사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죽음과 같은 삶에서 건져낼 구원자를 찾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에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 삶을 허락할 예수를 만나게 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난
주님이 다가올 때 거부하지 않으면,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성전이 내 속에 완성되어야 합니다. 민 1:1절은 ‘둘째 해 둘째 달 철째 날’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한
달 전인 ‘둘째 해 첫째 달 첫째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출 40:17절에 의하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후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성막을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짓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늘 자리잡고 있는 성막을 바라보며 구원의 하나님이 늘
함께 한다는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구약시대와는 달리 신약시대에는 고전 3:16절을 보면,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가 성전이 되고 우리 속에
성령이 내재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능력을 맛보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구원 받았다는 확신은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또 걱정과 염려가 있을 때, 모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시고 평안으로
채우십니다. 살면서 죽게 될 상황에도 성령은 기적의 능력을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적과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 가장 먼저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구조사를
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전쟁에 나갈 사람 수를 세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고 죽기까지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영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전도가 없기에 전쟁의 승리가 유일한 전도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전쟁에 나갈 때마다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승리를 경험케 했던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위해 죽기까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