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생활(12): 적용과 변화
고전 11:3-5,
11-12
오늘은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어 가려고 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에게 편지를 보내어 질문하고 답을 기다리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일 날 예배 가운데 여성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쓰야 하고 다른 한 쪽은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것이 왜 교회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에 살던 여성들은 외출하거나
공적인 모임에 참석 할 때는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던 사회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는 남성우월주의적 문화적 전통을 가진 시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고전 10: 12절처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녀를 동등하게 창조하셨다는 성경적 창조원리를 가르쳤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사도의 가르침에 특히 여성들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예배시간에 머리에 수건을 쓰지 말 것을 주장하고 실제로 그렇게 주일에 실행했습니다.
이 문제를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성경적 가르침이라면, 남자처럼
여자들도 예배 시간에 수건을 벗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여 성도들의 이런 행동은 비난
받기보다는 매우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삶에 직접 적용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둘째,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예배 가운데 여자가
수건을 쓰야 하는 이유를 이제 살펴 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고린도를 방문하면 많은 이방 신전의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방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 가운데 현란한 춤을 추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신탁을 받곤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려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교회
내에 여 성도들이 수건을 벗는 모습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방 신전의 여 사제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세상에 비쳐 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즉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에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드는 혼란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2) 다른 이유는 당시 항구도시였던 고린도 시에는 창녀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고 매춘을 했습니다.
만약 교회 내에 여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다면 ‘도덕적 문란’이 있는 곳으로 오해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 성도가 창녀로
오해를 받고 유혹을 받는 일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런 상황과 처지에서 바울 사도가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고전 11: 5절에서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머리에
수건을 쓸 것’을 주장합니다. 그 근거를 3절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매우 남성우월주의적 주장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는 남자와 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 지를 파악하면,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이유가 권위적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먼저 여자는 교회와 성도로 그리스도의
신부를 의미 합니다. 남자는 성도와
교회(여자)의 신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PPT>
여자=교회와 성도=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남자=교회와 성도(여자)의 신랑=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4절처럼, 남자의 머리에 수건을 두지 않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위에 아무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여성은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기에 여성의 머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남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머리에 수건을 둔다는 의미는 여성을 상징하는 교회와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예배시간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는 이천 년
전 한 도시에 발생했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논쟁입니다. 오늘날 어떤 개신교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도 없고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세상도 하나님 말씀대로 변화되어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시대로
전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성경적 가르침을 어떻게 실제 삶에 적용하느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적용을 너머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바울 사도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문화와 관습이
다른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당연히 서로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신년이나 추석이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좋은
전통을 지켜나갑니다. 그러나 그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는 것은 엄격히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성도는 사람들 간의 화목을 꾀하는 좋은 전통과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말고 성도는
앞으로 변해야 하는 시대의 방향을 이끄는 주역이 또한 되야 합니다. 당연히 인내가 필요하구요. 바울 사도는 이천 년 전에 성경적 가르침인 남녀의 평등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 실제 이루어지는 한 예가 되는 여성투표권이 (미국: 1920, 영국 1928년, 한국: 1948년) 주어집니다.
너무 변화만을 외치지 말고 오랜
좋은 전통과 문화를 살려 나가는 것도 전도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성도는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내하며 성경적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