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생활(10): 절제하는 신앙  

고전 9:25-27


 

한국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에서 자라다 보니 절제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좀 다른 의미이지만 절약이라는 단어도 나이 드신 분들은 익숙해 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절약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절제가 삶에서 많이 요구되었던 그런 시대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절제는 우리 삶에서 여전히 필요합니다. 특별히 운동 선수는 절제가 필수입니다. 우승을 위해 먹는 것 그리고 잠 자는 것까지 철저히 절제하며 훈련하는 모습은 측은하기 까지 합니다. 고전 9:25절에서도,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당시 고대 그리스 운동 경기자들은 경기에 나가기 전 훌륭한 코치의 지도하에 10개월 정도의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오락이나 금주와 절식 심지어 성적관계도 제한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 역시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역시 당연히 절제는 필요한 신앙훈련입니다.

 

많은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하지만 두 가지로 좁혀 집니다. 하나는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이나 명예에 대한 탐심을 억제하는 훈련입니다. 욕심이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육신의 정욕을 통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도는 절제 훈련을 해야 할까요?

 

첫째, 고전 9:26절 상반부에 향방 없는 것처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가 나는 잠도 안자고 이렇게 몇 시간씩 기도합니다내 귀한 물질 아끼고 시간 드려 선교 갑니다이렇게 자랑한다면 진정한 절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 안에서 절제의 삶은 남들과 비교해서 좀더 거룩한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거룩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절제 훈련의 목표입니다. 이런 것들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고전 9:26절 하반부처럼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싸움의 대상이 분명하다는 인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절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훈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대상은 확실합니다. 우선적으로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이며 또 믿음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고전 9:27절 상반부를 보면, “내 몸을 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졌습니다. 육체의 특성 중 하나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성도가 싸워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결국 절제의 훈련은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육체의 속성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쳐에 이어지는 말은 복종케 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복종케 한다는 말은 혹독하게 다루다또는 엄격하고 단호하게 훈련시킨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바울 사도 역시 자신을 엄격하게 절제하는 생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날 우리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에서의 절제 훈련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절제훈련만 강조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1) 금욕주의적 신앙생활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지나친 금욕은 우리들을 세상 속에 나아가게 만드는 것 조차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산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 지나친 금욕주의는 우리 스스로의 신앙을 남들과 비교하며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남을 정죄하는 믿음이 되어버린다면 누구를 품고 기도하겠습니까? 또 모두가 정죄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누구에게 전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성도에게 절제훈련 외에 다른 훈련이 병행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는 웨이터트레이닝을 해서 기초 체력을 쌓아 나갑니다. 성도에게 절제훈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기 신앙강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제로 잘라내고 다듬어진 내 신앙에 믿음과 덕을 쌓고 사랑으로 충만케 외형을 채워가는 훈련입니다. 그래서 절제만이 아니라 믿음을 강화하는 훈련도 병행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난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절제로 잘려나간 날카로운 부분이 사랑으로 보충되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됩니다. 지나친 절제가 교만으로 발전하게 되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품어낼 수가 없게 됩니다. 절제로 다듬어진 성도가 덕으로 충만케 되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한 성도의 철저한 개인적 절제훈련이 왜 필요한가를 나누려고 합니다. 고전 9:27절 하반부를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은 구원의 은혜에서 버림 받게 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유명한 부흥강사가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였지만, 정작 본인 자신의 스캔들로 복음을 전하는 자격마저 상실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성도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낸 온 성도님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절제의 훈련을 철저히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