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생활(5): 성결한 신앙
고전
6:12-13, 18-20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성도가 받으면 그 답 중의 하나는 ‘거룩해야 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입니다. 이 말씀은 청년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책임지고 나갈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음행이라는 성적인 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기에
버리지 못하는 실제적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려야 하는 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도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잘못 오해해서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다는
도덕 폐기론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죄와 율법에 대해 자유한
존재이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실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거룩한 몸을 쾌락이라는
죄의 도구에 맡기고, 무엇이나 해도 좋다는 무 분별한 방종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우리가 범한 온갖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으로 와서 십자가에서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들을 죽음과 사망에서
건져내어 주셨고, 새 생명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다시 죄된 모습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벧전 2:16절은,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역시 고전6:12절 상반부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자유는 죄에 대한 방종이 아니라
주 안에서 제한 받는 자유이어야 합니다.
만약 반복되는 성적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1) 일시적인 쾌락이 정말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 2) 이런 행동이
특히 사랑하는 가족(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즐기는 쾌락이 될지언정, 만약 자신의 행동을 알게 될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너무나 유혹이 많아 누구든지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육체를 마음대로 죄의 종노릇 하는데 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성도가 성결한 삶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지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적 방종을 합리화하는 어떤 시대적 괘변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13절 상반부에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는 말은 바울 사도 당시 통용되던 궤변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식욕이 본능이기에 채우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욕도 식욕처럼 본능이기에 충분히 만족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도 죄가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괘변이며 자기 합리화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이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없을까요? “남들 다하는 세상에 왜 나만 못해.” “피가
끓는 청년인데 그 정도는 괜찮아.” “다 포기하고 사는데 여기까지는 즐겨야지?” 이런 생각들이 성도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서 맺는 관계 외에 어떤 것도 성경은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저항하며 사는지요? ‘아이를
낳는 것은 안되고 동거는 괜찮아.’ ‘유학생으로 사는 것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데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는데
괜찮은 것 아니야?’ ‘적당히 만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조건이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 하고 싶은지요? 이 마음과 생각들을 마음과 생각에서
씻어 내기 바랍니다.
둘째, 성도는 육체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내
몸은 내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전 6:19절 하반부의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성도는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해 구속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확실히 선포해야 합니다.
믿는 순간 법적으로 등기 이전이 일어나 나에 대한 소유주는
하나님입니다. 엡 2:1-3절에 의하면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 종 노릇하던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값으로 주고 우리를 사주었다’고 고전 6:20절 상반부에서 선포합니다. 예수를 따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13절 하반부에서는 ‘우리 몸은 음란을 위해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20절
하반부에서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까지
당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될까요? 간략하게 3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1)나의 유익을 위해서나 내 정욕에 따라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아야겠지요. 2) 더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에서 복음전파나 섬김, 봉사, 선행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내 몸을 합당하게 드리는 방법들입니다. 3) 신앙이 성장해가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도 자기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결을 유지하는 비결은 음행은 나의 몸을 더럽힐 뿐 아니라 나의 인격과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음행은 육체를 파괴시키고, 관계가 깨어지고, 재산을 상실하고,
가정이 파탄 되기도 합니다. 이런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바울 사도는 18절에서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피한다’는
의미는 ‘반복되는 음행으로부터 철저히 떠나는 것’입니다. 음행은 우리의 마음이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탐닉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과 영과 혼인 전 인격을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고린도보다 음행의 풍조가 못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의 2030세대 사이에서 매독환자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어린 자녀들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쉽게 음행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침에서 저녁까지 언제든지 유혹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너무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사회적 구조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특별히 성도는 내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결한 삶을 위해 음행을 경계하며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먼저, 육신에
대한 잘못된 이 시대의 풍조나 사조를 말씀으로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소유된 몸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음행은 나의 삶과 인격을 철저히 파괴시키는 죄임을 알고, 내 속에
내주하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세상에서 성결을 지키고 거룩을 드러내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