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11): ‘를 허락하십니다

12:1-5

 

내가 바라고 원하는 시간과 이루어지는 것에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특히 학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는 1)학교가 정한 시간이 있습니다. 2) 학생 스스로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3) 지도교수가 정하는 시간이 학생에게는 또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한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4) 하나님이 정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늘 사람은 자신의 바램이 실현 되기까지 시간 차이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 합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이오면 1절에서처럼  하나님께 나가 도우소서라고 소리치며 간절함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편의 배경은 삼상 22장인 것 같습니다.

 

당시 다윗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고 기름부음을 이미 받고 왕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로부터 더욱 시기를 받고 놉이란 곳으로 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으로 먹을 것과 칼을 얻게 됩니다. 삼상 22:9절에 의하면, 마침 이 장면을 사울의 신하였던 에돔 사람 도엑이 지켜 보고 알리게 됩니다.

 

삼상 22:13절에 의하면, 사울은 이새의 아들에게 떡과 칼을 주고 매복하였다가 자신을 죽이려고 공모했다고 제사장에게 죄를 씌웁니다. 18절을 보면, 도엑이 가서 무고한 85명의 제사장들과 남녀와 아이들과 가축들까지 죽이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시 12:1절에서 다윗은 거짓과 아첨으로 경건한 자들이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서 없어짐을 슬퍼합니다.

 

다윗은 너무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들려오지 않고 하나님은 그 시간조차 앞당겨 주지 않습니다. 답답함이 있습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늘 라는 시간에 있어서 만큼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우리 입장에서는 늘 하나님 마음대로 하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무 일방적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다윗에게 갑자기 하나님이 이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시간에 개입해서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계획은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험이 마무리되고 논문이 통과되어 졸업하고 직장이 연결되어 떠나는 것은 늘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거의 매년 보아 왔습니다. 16:9절에 의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 스케줄에 맞추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맞출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 보려고 합니다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런 불필요한 시간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3:1절을 개역한글로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번역합니다.

 

이 구절은 어떻게 해석 되든 시간에는 목적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시간을 정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까지 원하는 수준까지 충족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훈련 시간을 추가 시킵니다. 지혜로운 분들은 마지막에 가서 엑스트라 훈련을 받지 마시고 미리 신앙생활에서 4가지를 잘 훈련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순종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순종이 없으면 아무리 돈 많고 세상에서 잘 나가도 하나님 나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르신 사람을 훈련 시키기를 좋아하십니다. 충성된 자를 요구하기에 순종이 약하면 과감히 모든 것을 멈추시고 순종의 사람으로 만드는 훈련에 돌입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으로 듣거나 사람을 통해 특별히 목회자를 통해 순종을 요구할 때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순종하는 훈련을 쌓아가 보기 바랍니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물을 공급하는 상수관이 중간에 뭔가 막히면 물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종은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복이 흘러가는 통로가 막힘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과 일대 일의 관계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훈련입니다. 크리스천이 성경 안 읽고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당연이 하지요? 과연 그렇습니까? 몇 십 년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성경 한번 읽지 않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없기를 바랍니다. 또 밥 먹을 때 잠잘 때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씀하면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또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도 있다는 것 좀 기억하며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일대 일의 관계는 이런 비유로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수도 파이프가 중간에 끊어지면 어떻게 물이 집까지 잘 올 수 있겠습니까?  

 

전에도 한 번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내 몸 건강을 위해서는 다들 운동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훈련도 반드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일대 일의 만남의 시간을 소홀히 하지 마시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온 성도들이 함께 훈련 받는데 나만 열외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셋째, 소명을 갖기 원합니다. 간단히 말합니다. 소명은 주님 주신 재물과 재능과 능력을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입니다. 이것 없으면 그냥 내 배부르고 좋은 집에 살다 죽게 될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명예 물질 재능 시간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들 흘러 보내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소명이 분명하지 않으면 파이프에 구멍이 나서 누수가 생깁니다. 많이 가져도 높은 자리에 앉아도 공허할 뿐입니다. 교수로 간 우리교회 청년 출신 한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훈련 받은 대로 다니는 교회에 힘든 청년들 불러 밥 먹이고 친교하며 위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소명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세상에서 발견하고 내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결단과 때로는 서원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기로 약속하기를 원하십니다. 결단은 하나님과 나와 맺은 단단한 약속입니다. 결단을 비유로 말하면, 긴 두 수도관을 단단히 잇는 연결 파이프와 같습니다. 약속은 단단할수록 좋은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때로는 서원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쓰임 받는 를 결정하는 분입니다. 모두가 주의 손에 붙잡혀 그 때에 잘 사용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과 매일 하나님과 관계와 이 땅에서 해야 할 소명과 또 그 결단과 의지를 철저히 확인하기를 좋아하십니다. 모든 분들이 준비되고 훈련 받아 하나님이 허락하는 때에 잘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