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12):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 13:4-6

 


단기선교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시 주일 설교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돌아갑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사랑은 진리를 기뻐한다고 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1) 진리는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시대나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찬성한다고 진리가 되지도 아닙니다. 그래서 진리는 참과 거짓을 구분 짓는 기준입니다.

 

2) 진리를 존재적 개념으로 말할 때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영원하지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생각이 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만든 종교나 철학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직 불변하시고 피조물이 아니며 스스로 계신 하나님 한 분만이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3) 진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를 추구하게 합니다. 진리는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불의를 싫어합니다. 옳고 선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 되신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심어주신 때문입니다. ‘는 죄를 짓지 않고 선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세상에는 인간에게 필요하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는 돈과 이름을 날리게 하는 명예도 있습니다. 권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것들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필요하고 좋긴 하지만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 멀리하고 예수만 따르면 배 부르고 성공 보장 받고 즐기며 살 수 있습니까? 솔직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고, 핍박과 어려움 속에 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시간 나면 봉사하고 물질 허락하면 구제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아도 기쁘고 즐겁다면 정말 좋은 것 아닙니까? 내 일생을 다 던져 투자해 볼만한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이 무엇이라 해도 성도는 진리 되신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 부럽지 않고 없어도 즐겁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찬양하며 즐겁게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진리 되신 예수가 원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보혈의 피가 죽음 이후 심판과 사망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게 했습니다.

 

이 해방은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보다 더 큰 기쁨을 주게 됩니다. 가지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더 큰 기쁨임을 알게 하고 행하게 합니다. 또 사탄의 거짓 속임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만듭니다. 어릴 적에 배신당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성장한 후에도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어 친구를 만들지 못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에 속습니다. 이 속임에 속아 나이가 차도 결혼도 않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를 만나면 거짓에서 해방됩니다. 사탄의 속임에서 풀려 납니다. 거짓에 속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를 만나 자유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래 전 전도사 시절입니다. 질병으로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썩고 체중이 느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와도 뒤에 안고 앞에 서는 것을 전혀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후 변했습니다. 자신의 외모가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가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비전을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셋째, 진리는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에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모세를 보기 바랍니다. 11:24-25절을 보면, 애굽인으로 공주의 아들로 살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바로의 궁중에서 사는 것보다 더 즐거워했습니다.

 

9:9절을 보면, 진리이신 예수를 사랑했기에 마태는 돈이 있는 세관원의 자리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를 만난 삭개오를 보기 바랍니다. 매국노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진리이신 예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줍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듭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찾게 됩니다. 버릴 것도 써야 할 것도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사랑을 주님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진리를 알아갈 때 꼭 알아야 할 것 하나를 나누려고 합니다. 진리를 만날 때 어려움도 아픔도 함께 온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죄된 인간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옛 자아를 고칩니다. 그래서 아프기도 합니다. 과거 습관과 내가 믿고 있던 가치관까지 버리게 합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나를 상실한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그렇게 좋던 것을 버려야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 아픔을 반드시 참고 견뎌야 회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 믿고 난 뒤 말씀을 들을 때 이런 경험을 더 하게 됩니다.

 

들려지는 말씀 가운데 내 마음과 생각을 흔들고 찌르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치유에 앞서 거짓을 드러내고 우리의 허물을 도려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할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평화를 외칩니다. 전쟁은 없다고 합니다.

 

성전이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포로가 된 사람들이 몇 년 내에 돌아올 것이라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반대로 선포합니다.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들의 거짓을 드러냅니다. 수치를 드러냅니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포로 가운데 고생하게 될 것을 전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아프지만 반드시 은혜가 뒤 따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될지라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은혜가 전달됩니다. 이것이 진리를 만나 누리는 은혜의 복입니다. 고난이 있지만 그 아픔들이 회복과 평강을 우리 가운데 가져다 줄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