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11):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고전 13:4-6

 


단기선교를 다녀온 과테말라는 한반도 반 정도 크기이고, 천팔백만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 IMF 보고에 의하면 1인당 GDP $5100달러 정도입니다. 우리 팀이 사역을 한 곳은 공항에서 차로 약 7 30분 정도 떨어진 치섹지역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50분 정도 떨어진 따빌라 마을입니다.

 

우리 교회가 몇 년 전에 마을 앞에 다리를 놓아주고 교회건물을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따빌라 마을은 다리가 놓이자마자 길이 넓어지고 초등학교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아직도 중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곳도 더 많은 발전이 있기를 위해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몇 년 동안 과테말라 선교지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분명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는 형편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지 선교사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오랜 내전의 정치적 혼란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 불의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6절도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기뻐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불의를 두둔하거나 방치해 두거나 무덤덤히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불의에 대해 기뻐하지 말아야 하는 그 이유가 명백해야 합니다.

 

첫째, 어느 시대 어떤 곳이든 불의는 세상을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 간단히 말하면 이웃을 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그대로 방치하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과 남이 행하는 불의까지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내가 좋다는 이유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됩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빌미로 타인에게 어떤 짓을 해도 된다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가정 폭력입니다. 또 요즘 문제가 되는 스토커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명백히 죄이며 불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서기 싫어 귀찮다고 생각하고 불의를 계속 방치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 스스로가 나중에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불의를 멈추어야 하는 세 번째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생각할 것은 불의에 대해 우리가 무심하고 그저 지나간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와 불의에 대해 묵과하지 않습니다.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자신이 저지르는 불의는 물론 세상의 불의를 멈추게 하기 위한 행동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리로 달려 나가 사람들을 모으고 캠페인을 하는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그들을 돕고 후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내가 당장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당장 불의에 대해 화내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답은 아닙니다.

 

성도는 애통해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 죄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의 불의까지도 품고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와 용서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앞서게 되면 자신의 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상대방의 허물만 보입니다. 자신을 거룩한 의인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허물은 안 보이고 남의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불의에 대해 한 가지 더 마음에 둘 것이 있습니다. 불의를 당한 사람들을 볼 때 교만하더니 꼴 좋다고 조롱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이 가르치는 사랑은 아픔을 당한 자를 볼 때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 말 안 듣고 고집 피우며 혼자 길 가다가 강도 만났다고 비난부터 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바라보며 치유해 줍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은 불의에 대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첫 행동이 불의를 보고 애통해 하는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 불의로 고통 당한 사람들을 찾고 위로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