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10):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전 13:4-5


 

사랑의 속성 15가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해야 하는 것 7개와 하지 말 것 8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고전 13:5절을 보면,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다는 의미는 목록을 작성하여 기록을 남긴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에 명확하게 기록하듯이 쌓아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누군가의 나쁜 기억이나, 남들의 약점이나 비판 거리들을 쌓아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남아있으면 나로 하여금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 같이 결국 우리도 남을 용서해서 내 속에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여기서 억울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또 먼저 회개해야 용서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시기 바랍니다. 5: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친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원수 같은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용서를 구하고 회개 하기도 전에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허물고 죄를 용서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 갑니다. 어린 나이에 충격과 좌절과 원망 가운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나중 애굽의 총무가 되고 형들을 만났을 때 형들은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이미 그들의 과거 죄를 용서 했고 보복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보낸 보디발의 아내를 추궁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꿈까지 해석해 준 사람에게 왜 나를 잊었느냐 따지고 묻지도 않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의 과거 잘못과 실수 허물 죄들을 기억에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할까요? 만나보면 인성이 착한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본문이 말하는 사랑은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첫째,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회복된 나를 발견하는 믿음이 우선으로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단점 보다는 장점을 더 보고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 성화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런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성령님께 맡기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성화의 삶이 필요한데 여전히 내 고집 내 생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또 결혼생활에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입니까? MBTI 16개로 나눠집니다. 너무 소극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 적극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주 안에서 사랑으로 이해하는 연습을 계속해 보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조차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아이라도 성격이 소극적이면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얼마나 일을 꼼꼼히 살피고 처리해서 실수가 많지 않습니다. 말 많은 아들이 있으면 얼마나 지겹지 않는 가족 여행을 즐기겠습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말을 좀 돌려 말하지 못하고 직설적인 부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의 깊은 배려와 정이 가정을 든든히 세워 갑니다.     

 

모든 것이 불평과 지적 거리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칭찬과 격려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받는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믿고 바로 그 다음 죽으면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믿은 후 성화의 삶은 주님 만날 때까지 이 땅에서 지속 되어야 할 훈련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악한 것이 아니라 늘 좋은 것을 마음에 담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를 눅 6:45절에서 보려고 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으로 입으로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를 삼하 1:17-18절에서 다윗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추격을 받았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광야 동굴이나 숲에 몸을 숨기며 지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원수였던 블레셋에 망명하며 목숨을 연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의 전사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제 다윗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이제 나쁜 말로 사울을 비난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애가를 지어 부르며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게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재하는 그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담지 않는 훈련이 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죽음 앞에 애가가 입술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의 허물과 죄를 내 마음에 두지 않는 비결을 교회사를 통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기독교가 공인을 받기까지 많은 박해를 로마로부터 받았습니다. 자신들 앞에서 가족이, 믿음의 형제자매가 사자 밥이 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원한과 악이 받혀 로마에 격렬히 저항하며 칼을 들어 복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굴을 파고 아이를 낳고 가르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알고 훈련 받은 대로 몸으로 따라갔습니다. 실제로 복수하지 않는 것이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은 증거입니다.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나쁜 생각도 마음에 담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성도간에도 복수하지 않습니다. 악한 생각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