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5):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전 13:4

 


살다 보면 부모는 자식 자랑, 자식은 부모 자랑, 아내는 남편 자랑, 남편은 아내 자랑 등 많은 자랑들을 세상에서 듣고 삽니다. 어디 그것만 있습니까? 가문 재능 재산 학벌 외모 인맥 등도 있습니다. 교회도 성도 수가 많거나 주차장이 있는 것도 자랑거리가 됩니다. 심지어 성도들 사이에는 은사 자랑까지 있습니다.

 

사랑과 자랑은 글자 하나 차이입니다. 자랑이 무엇입니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본능입니다. 아이들 자랑하는 모습 너무 귀엽기만 합니다. 또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가 자랑 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랑을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성숙한 인격을 소유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열등감으로 남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더 빠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만큼은 해서는 안될 금지된 자랑이 있을까요? 1) 자기 자랑입니다. 자기자랑이 강한 분일수록 본인이 잘나서 성공했고, 스스로 이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내가 영광 받는 것을 너무 당연시 여깁니다. 이런 자아도취적 자랑은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시하는 죄를 범합니다.    

 

2) 은근한 자랑입니다. 명품으로 치장하여 자신이 누군가를 드러내려 합니다. 쏘셜미디어를 통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합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열등감을 가리는데 사용되는 이런 자랑들은 멈추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고전 13:4절 역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1) 자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영광을 내가 가로채는 도둑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2)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만족함을 느낀다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랑은 나를 파괴시키는 것이며 피곤한 인생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 따지고 보면 성도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 은혜입니다. 죄 용서함 받은 것도 나의 착한 행실이 아닙니다. 구원 역시 나의 공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지위 재물 생명을 가져가면 한 순간에 날아가고, 무너지고,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을까요? 나의 연약함입니다. 남들 앞에 나의 약함을 말하는 것은 창피합니다. 기분 나쁩니다. 자존심 상합니다. 짜증납니다. 어쩌면 정신 나간 사람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왠지 그에게서 하나님만 붙잡고 사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정말 그가 행복해 보입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만 드러내며 살도록 세상에서 구별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 자랑이 끼어들면 예수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받을 영광이 가려집니다. 이런 비정상적 인생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랑거리가 차고 넘쳐도 늘 허무 합니다.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라면 반드시 자랑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되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1) 하나님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 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예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고,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예수 보혈의 은혜입니다. 3)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날마다 우리가 예수 닮도록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이것 자랑하기가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잘 되고 평안한데, 나만 잘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은 마 11: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미래는 점점 불안하고, 연구는 어렵고, 자녀마저 짐으로 다가온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게 오라고 말씀하시는데,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가까이 왔다고 따질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 읽고 묵상하고 암송까지 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주께 온 것이 아니라니요?’ 주님께 가까이 오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온 것이 아니라 반만 온 것입니다. 왜 반입니까?

 

주님께 가까이 오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와 서먹한 관계가 아니라 긴밀해 지는 것입니다. 주께 가까이 간다고 하면서 주님의 몸인 교회 일에는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일은 소홀 합니다. 이것은 나의 반만 온 것입니다. 반만 드리는 삶은 나의 전부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남은시간은 왜 자랑은 사랑이 아닌가를 나누려고 합니다. 자랑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랑은 일방적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랑은 그것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인을 실족하게 하는 죄입니다. 죄까지 짓게 만든다면 어찌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자랑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마저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까지도 어기는 것입니다. 결국 자랑은 우리의 이웃은 물론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마저 파괴시키는 너무나 위험한 죄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자랑하지 않고 사랑만 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죄인처럼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의 사랑입니다. 자랑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상처받는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사랑만 자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