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4): 시기하지 않습니다  

고전 13:4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는 사랑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고쳐 가기 위해 사랑의 속성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고전 13:4을 보면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시기질투로 번역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시기는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나는 없고 남이 가질 때 생깁니다. 질투는 나도 남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내 것이 더 좋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쁜 얼굴이 남에게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시기일 것입니다.

질투는남보다 더 예쁜 얼굴을 내가 갖기를 바라는 것이 되겠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류 최초 형제 살인이 바로 이 시기심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요나의 시기심은 이방민족까지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복과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만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신약에도 시기심은 여전히 소개 됩니다. 재산을 다 잃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 아버지는 잔치를 벌입니다. 이것을 본 탕자의 형은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형의 시기는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서 이미 누리고 있던 복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기는 우리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씀은 여러 곳에서 보여 줍니다.  

 

우리 속에서 어떻게 시기심이 일어나는지 누가 정확히 알겠습니까? 하지만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끝나면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옵니다. 동시에 속에서 부러움이 생겨납니다. 부러움이 미워하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 시기입니다.  

 

남들과 비교되고, 그것으로 부러운 마음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더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긍정적으로 대처를 못하고 시기하기 시작하면, 우울해 집니다. 교회 생활도 불편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탈출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정 반대로 가야 합니다. 시기의 반대는 축복입니다. 남들이 나보다 더 잘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면, 상대를 무조건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사울이 듣습니다

 

만약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다윗이 적들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사울이 다윗의 공을 인정했다면? 또 훌륭한 장수를 보내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면? ‘이 사람을 세워 나라를 든든히 세워 가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울은 나중 악령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울의 그 뒤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려고 하면, 다음과같이 한 번 따라가 보기 바랍니다. 1) 우리 공동체에 기쁨과 경사를 주신 것을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2) 가능하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 축하하고 축복하는 말과 마음을 잘 전달하기 바랍니다. 3) 그 다음 순서까지 가면 더 확실합니다. 우리의 성도의 삶에 누가 태어나고 학교 가고 졸업하고 진학하고 직장 얻고 승진하고 결혼하고 얼마나 축하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마다 내 가족이면 감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도 좋은 소식들이 참 많이 생깁니다. 함께 축하 할 소식을 들으면 우리 공동체에 기쁨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내 가족처럼 함께 기뻐하는 그런 감사가 우리들 가운데 더 많이 앞으로 생겨 날 줄 믿습니다. 남을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 창 12:3절을 보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준 축복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3:7절을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이웃들을 축복하면,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더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를 믿고,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분들만 아멘으로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져 보기 바랍니다. 기쁨이 나누어지는 현장에서 함께 축하하고 축복하면 기쁨이 더 커집니다. 내 속에서 시기가 생겨 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미 누군가를 시기하고 있다면 이겨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기하고 있는 그 사람과 함께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지금 막 구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생명의 위협이 있던 상황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큰 가방을 들고 나왔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것 비교하며 시기하겠습니까? 산 것에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내 손에 있는 빵을 배고파 하는 형제의 입에 넣어 줄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해 추위에 떨고 있는 자매에게 내 겉옷을 하나 벗어 덮어 줄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죄의 구덩이에서 예수 그리스를 통해 다 함께 구원받은 동료입니다. 예수 보혈로 영원히 죽을 사망에서 건져 내진 형제자매입니다.

 

한번 좌우를 보기 바랍니다. 주위 사람들이 미움과 시기의 대상으로 보입니까?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기도하며 함께 험한 세상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민생활 유학생활입니다. 시기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앞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면, 내 옆의 사람들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너무 충만해서 부러움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