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2): 사랑을 더하십시오   

3: 14


 

오늘 졸업예배를 드리면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과 부모님들께 감사와 졸업생들에게 축하부터 했으면 합니다. 어제 많이들 졸업식을 갖고 떠나긴 했지만, 혹시 졸업생이 여러분 옆에 있으면 축하해 주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학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친 분들과 가족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드렸으면 합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은 어려운 공부, 힘든 날씨 잘 이기고 이곳보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 살게 될 것입니다. 다들 힘들어 하지만 늘 이 복된 시간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나누긴 했지만, 졸업시즌이 오면, 무슨 말씀을 나눌 것인가를 늘 고민하게 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결국 인생은 사랑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고, 자녀가 태어나고, 가족을 이루고, 친구를 만나고, 공동체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 사랑하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산다는 것은 영어로 ‘live’ 이고 사랑한다는 것‘love’ 입니다.

 

글자 하나만 다릅니다. 인생은 ’(I)사람이 다른 사람들’(Others)을 만나 서로 사랑하며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골 3:14절을 보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너머 사랑을 더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1:9절에도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하라고 권면합니다. 살전 3:12절 역시 또 주께서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며, 더욱 많이 넘치게 하며, 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4:12절에 의하면, 말세 때는 사람들의 사랑이 식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성도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3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 교회에서의 섬김, 그리고 성도와의 교제 등이 약해집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교회 밖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됩니다. 전에는 이웃들의 아픔이나 고통에 관심을 갖고 물질로 후원도 했습니다. 이제는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지갑조차도 잘 열리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이라는 더 큰 공동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전쟁소식과 기근으로 굶어 죽어간다는 이야기, 인격이 무시당하고 인권이 침해 당하는 뉴스들을 들어도 늘 있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내 이야기처럼 가슴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을 때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는 내 모든 삶과 연관되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은 더 심각한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딤후 3:2-4절에 의하면, 사랑의 대상을 바꾸어서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인간에게서 드러납니다. 돈에 노예가 되어 자신도 쉬어야 하는 시간도 잊고 살아갈 정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마약도 이제는 한 가지가 아니라 몇 개씩 복용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악으로 인해 우리 삶이 파괴되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은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이 세상에 더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5:8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죄로 영원한 사망 가운데 던져질 우리를 구원한 사랑입니다. 자기 몸을 내어주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 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가 들어온 세상에는 빈 껍데기 사랑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롭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모습을 보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었던 부부가 서로 비난합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4장은 형제가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고 죽입니다.

 

더 나아가 가인의 후손들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다른 아내까지 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원칙들이 가정에서부터 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편안을 위해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오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그저 인간의 쾌락을 위해 오락과 편안함을 위해 문명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도 없습니다. 생각은 더욱 허망해져 말씀조차도 부정하며 날로 심각해 지는 모습입니다. 결국 세상에 더해질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멸망할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땅끝까지 더 알려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이어 세상에 더해야 할 것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의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만 13세 이상 3 6천명을 대상으로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전국 기부율이 발표됩니다. 한국 통계청에 의하면, 2011 36%. 201530%, 2017년에 27%, 2021년은 22%로 점점 줄어듭니다(10년 사이에 14% 감소추세).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harities Aid Foundation, CAF) 2010년부터 120여 개국, 200만 명을 대상으로, 모르는 사람 돕기. 기부나 자원봉사 경험들을 바탕으로 세계기부지수를 발표합니다. 작년 2022 1등은 인도네시아. 2등은 케냐, 3등은 미국 순으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2011년에 57, 2018년에 60, 2022년은 88 위로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일등을 하는 이유는 무슬림의 의무인 빈민구제(자카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가진 힘입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성도는 사랑을 실천하는 출발이 다릅니다. 종교의 힘이 아닌 사랑 자체인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했기에 온전한 사랑을 세상에 더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는 말씀의 

미는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해질 때 세상에서 끊어진 모든 것들이 이어지고

깨어진 관계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점점 냉랭해 지는 세상 한 가운데서 

사랑을 하는, 졸업생들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