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11):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
골 1:9-10
오늘부터는 골로새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이단사상으로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목회자였던 에바브로는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 형편을 알립니다. 소식을 들은 바울은 교회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진리의 복음 위에서 신앙을 잘 지켜 나가도록 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방금 전에 읽은 본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골 1:9절을 보면 바울은 가장 먼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알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을까요? 하나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실패하기에 하나님의 뜻은 너무 중요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너무 일방적으로 우리 입장에서 드리는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 1:10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성도가 알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합당이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안 성도는 그분의 뜻에 맞는 합당한 행함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목적어에 해당되는 ‘하나님’을 생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뜻을 알았다면, 행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어도 행하지 못할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기에 10절
중반부 표현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하나님의 패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잘 안 들려질 때는 내가 아직 주님의 기쁨이 되기에 부족한 사람인가를 깨닫고 기다려야 하겠지요. 이것을 알게 되면, 10절 하반부처럼, 성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에 성장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한 것을 줄 때만 좋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다리게 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설령 안 준다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성숙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고, 선한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됨을 말해 줍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에 사탄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저지하려고 신경 쓰겠습니까?
창 3:1절을 보면 사탄이 사용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사탄은
여자에게 다가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말씀을 살짝 추가시켜 혼돈스럽게 만듭니다. 창 3:3절에서, 여자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고 답합니다.
그녀의 답은 부정확합니다. 창 2:9을 보면, 동산 중앙에는 선악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먹지 말게 한 것은 선악과라는 사실을 확실히 말하지 못합니다. 또 ‘만지지도 말고’라는 말을 추가합니다.
게다가 창 2:17절에서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해석합니다.
창 3:4절을 보면 사탄은 여자에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거짓말까지 합니다. 또, 5절에서는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이런 대화가 있고 난 뒤
창 3:6절을 보면 여자의 영적 눈은 흐려집니다. 사탄의
말이 더 좋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입니다. 게다가 자신만 먹은 것이 아니라 옆에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줍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힘을 실어줄 다른 사람도 동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사람들의 실패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기억하고, 분별하여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성도는 가장 먼저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성도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지혜나
경험 등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비결입니다.
자꾸 인간적인 방법을 찾고 사람을 만나 조언을 듣는 일이 더 많아지면, 하나님 말씀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만큼은 일년에 성경을 일독은 못해도, 평생에 한 번은 꼭 해보기 바랍니다.
다음은 성도가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9절을
보면,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길 원한다’고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총명’은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 앞에 ‘신령한’이라는 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성령께서 주시는’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Chat GPT 에
여러분의 사정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바랍니다. 답이 나오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도 안 되는데, 인간이
만든 기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고전 2:10-11절에 의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 행위 자체가 기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기도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 7:7절처럼,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살전5:16-18절처럼,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 심령에 기쁨을 더해주고, 기도를
더 깊어지게 만들고, 내 입술에서 감사가 나오게 만드는 것을 따라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