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9): 눔바
골 4:15-16
먼저 PPT를 보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시대
당시 소아시아 지도입니다.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약 10마일
거리에 라오디게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골 4:15절에
의하면, 라오디게아에 ‘눔바’ 라는 한 여 성도가 있고, 그녀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모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여러 이방신을 섬기는 로마 신전도 예배 장소로 활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모이기 쉬운 가정집이 교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점점 심해지는 로마의 박해로 공식적인 집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건물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 드리는 형태였습니다.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특별히 여성들이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 놓은 사례들이 몇 있습니다. 잘 아는 마가의 어머니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아디아 사람이지만 빌립보에 거주한 자주장사 루디아도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가정교회는 핍박을 받을 가능성이 당연히 높았습니다. 눔바는
그런 종교적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처소로 자신의 집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사용했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당연히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어떤 어려운 환경으로 주어져도, 그것에 눌려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주 안에서 성령이 허락 하시는 담대함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 종교들은 핍박을 받아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종교가 무장을 하거나 비폭력적으로도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가진 성도는 저항하고
싸우는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예배가 생활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재지변이 나고, 전쟁이 나도 예배는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 중에도 주일이 오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피난 와서도 천막을 치고 주일에 모여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2) 눔바는 어려운 가운데 주님을 섬기는 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신앙인의 당연한 삶이라 여기며 살았던 성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희생과 봉사와 섬김이 주를 따르는 삶이라고 생각 되면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섬김이나 헌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희생한다’는 마음이 들고,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교만도 생기는 것입니다. 내 시간과 물질을 내어 드리는 모든 행위가 희생으로 간주 됩니다. 그런데
자녀를 키우고, 학교에 라이더를 주고,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는 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분 계시는지요?
자녀들에게 라이더 줄 때마다 시간 비용 다 따지고 계산해 두었다가 나중 청구서 제출하는지요? 이
세상에 그런 분은 정말 없을 수는 없지만 예외일 뿐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그저 주는 것이고, 더 주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와 희생입니다.
‘내가 희생한다, 섬긴다, 봉사한다’고
생각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사랑의 관계에서 이탈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드렸기에, 사람들에게 주었기에 본전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안 알아주면 서운합니다. 내가 바라는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면 너무 심각하게 섭섭해 합니다. 이런
것들을 성도는 말끔이 청산해야 합니다.
눔바는 여 성도로서 더 많은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닥칠
위험성이 노출되던 시대입니다. 자신의 집을 성도가 모이는 장소로 제공하려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경우도 가정할 수 있지만, 반드시
남편을 먼저 설득하고 그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초대교회 가정교회는 혈연중심으로
모이다 보니, 구성원들이 가족들이고, 이웃 친구들이고, 함께 사는 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눔바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가정의 여러 구성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무나 나를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이 보고 있는 집에서 가족들로부터 인정 받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눔바의 가정 교회는 바로 서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눔바는 자신의 가정교회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아직 가정의 달은 아니지만 질문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얼마나 아내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신지요? 세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전에 먼저 성도는 가정에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보기에도 부모님들이 본받을
만한 성도일까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늘 싸우는 아빠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이제 더 이상 소통이 끊어진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들은 결혼을 아름답게 생각할까요? 맨날 부모가 싸우는 이유가 자신들 이야기라는 사실을 듣는다면, 우리 자녀들은 밖에서 당당하게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에서 부부간에 인정받고, 자녀들에게 본이 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대화를 멈추어 버렸는지요? 다시 한번 주 안에서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시작해 보기 바랍니다.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로마라는 시대 상황에서,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한 여 성도의 가정 신앙생활의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집에서 어떤 신앙인인가요?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모습이 여전히
가정에서도 살아있는지요? 힘든 이웃들을 돕는 그 사랑이 가장 가까이서 수고하고 있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에게 나타나고 있으면 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고난이 다가오고 죽음이 예상되는 힘든 시기에도, 믿음을 지켜나간, 한 성도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1) 그녀는 죽을 각오로 예수를 믿고 따르고 있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2) 어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도 성도의 섬김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3)성도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영향력이 있어야 하고,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과 세상과 교회와 가족에게 인정받는 성도가 되기를,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