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7): 의사 누가
골 4:14
어떤 일을 할 때 집중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수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손해를 보기 전에, 내 실수를 누군가 미리 발견하여 수정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 가정에서는 부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한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도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험한 일을 자진해서 하는
고마운 분들이 있습니다.
또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척척 처리하는 분도
있습니다. 골 4: 14절에서 소개되는 ‘의사 누가’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바울과 사역했던 누가를 한 번 살펴 보려고 합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점점 떠나 갔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강조하는 간략한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구약에서
예수님에 대해 예언된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내용을 쓰게 됩니다.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
역시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살피며 글을 남깁니다.
하지만 1) 누가는 마태와 마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그는 의사로서 특별히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누가를 ‘여성복음’ 또는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라 불릴 정도로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12명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 중에 9명이 누가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예: 마리아와 마르다).
또 예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들처럼 힘들고 지치고 배고프고 눈물 흘리는 인간적인 면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에만 계시는 초월적인 신이 아닌 이 땅에서 인간들과 동고동락을 함께하고,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는 하나님을 느끼게 만드는 복음서의 저자입니다.
2) 누가는 비록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
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성도의 교회 생활도 이렇게 되야 합니다. 교회는 늘 한가지 경직된 사고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을 수용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늘 예수에 집중하며 나아가는 신앙 공동체인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가 되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녹여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따라가는
기도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서로 다른 시각들을 같은 방향으로 보게 만듭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분쟁과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은 교회나 가정이
얼마나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누가는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예수님의 개인기도, 중보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등 다양한 기도 유형을 소개해 줍니다. 게다가 마태는 3회, 마가는
5회, 요한은 2회, 누가는 9회로 다른 어떤 복음서들 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예수님의 영성에 그대로 그에게 베어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마친 후 성령으로 성장하는 교회 모습을 기록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령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나갔습니다. 성령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았던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했습니다.
이방 교회들은 구제헌금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아름다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누가는 이런
모습들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성도들에게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잘 알려 줍니다. 교회는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랑하는 공동체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누가는 마태 마가가 남긴 복음서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인터넷이 발달된
것도 아닙니다. 여러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 추구했다면, 이런 기록들을 볼 수 없었겠지요. 3) 결국
누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묵묵히 성실히 주 앞에서 행하는 성도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15번, 마가는 32번, 요한은 15번 정도 성령(프뉴마)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17번,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무려 57번이나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뜨거운 열정을 갖게 만듭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성령체험을 한 베드로는 예루살렘 도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행 8:1절을 보면, 스데반은 자신의 죽음으로 온 유대 땅에 복음이 퍼지는
불씨가 됩니다. 행 8:5절에서는 빌립 집사를 통해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도달합니다. 행 13:4절에 의하면,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는 자신들이 적대시했던 땅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사랑의 폭을 더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좋고 누구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정말 주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은 한국인들 만이 가지고 있다는
‘한’도 녹여 냅니다. 나를
찌르고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도 품게 만드십니다. 이런 성령의 체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PPT 참조). 누가는 수리아의 안디옥(안타키야) 출신으로 전해집니다. 4) 누가 자신도 이방인이면서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마태는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까지 올라갑니다. 유대인들의 조상에게서 멈춥니다. 나중 예수를 믿게 되는 이방인이
볼 때 더 이상 확장력이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눅 3:38절을 보면 조금 다릅니다. 예수님에게서
아담까지 올라가고, ‘그 이상은 하나님’까지 확대합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친밀감을 제공합니다. 또 눅 2:32절에서 예수님은 유대 땅만이 아니라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선포합니다. 그 빛이 어두움으로 싸인 이방 땅에도 비추고 있다는
소망을 던져 줍니다.
누가는 복음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눅 2:10절에서 정의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누가는 세상
모두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뜻을 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문체를 보면 그가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의술로
사람에게 인정 받으며 편히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이 안 좋았고 간질 병을 가졌던 바울과
동행하며 한 사람의 주치의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는 한 개인에게 누구도 줄 수 없는 배려와 도움을 끝까지 준 사랑의 사람입니다.
골 4:14절을 다시 보면, 바울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로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본 누가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 곳에 관심을 갖고예수님의 행적들을 발굴해 기록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못 본 것을 보았다고 자랑하지도 않았고, 보지 못한 사람들을
폄하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예수를 전하고 다른 복음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더 예수를 알게 했고 믿게 하는데 쓰임 받는 도구로 사용 되었습니다. 자신이
편해지는 만족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의 부족함을 보완해서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려는 수고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도 성령에 사로잡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주 안에서 해 내었습니다. 병들고 나이 든 초라한 한 개인을 주의 사랑으로 끝까지 대했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모두가 나아가서, 성령 충만하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