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4): 오네시모 

4:9, 1:9-10, 12, 18



골로새 교회 성도를 통해 신앙과 교회생활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골 4:9절을 보면,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골로새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입니다. 바로 빌레몬서에서 언급되는 이름입니다.

 

1:9-10절에 의하면, 노년에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오네시모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감옥에서 바울에게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바울은 그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까지 부르게 됩니다. 그 이후 그와의 교제를 통해 나중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 지역에서 부자로 있던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몬 1:18절에 의하면 주인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히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 4:9절을 다시 보면, 바울 사도는 그의 과거가 어떠했던지 신경 쓰지 않고, 예수를 영접한 오네시모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주 안에서 낳은 영적 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 받는 형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합니다.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통해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죄로부터 건져내 줄 구원자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예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사람에게 왔다고 합니다.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실 것입니다. 죄가 영원한 심판과 사망 가운데 우리를 묶어 두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영원한 사망에서 탈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절망 가운데서, 오직 죄 없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내 죄를 용서해 주고,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복음을 들을 때, 마음속에서 소망이 생기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고백이 입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성도는 죄 용서함 받은 후 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알아 갑니다. 구원 받은 후부터 쏟아지는 복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이미 지난 해 봄 로마서 시리즈로 다루었기에 생략합니다.

 

오늘 주인공 오네시모를 보기 바랍니다. 주인에게 피해를 주며 도망친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서 다른 한 죄수를 만납니다. 그런데 그가 전해준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비록 노예로 살지만, 더 이상 자신은 예수 안에서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오네시모는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을 바울 사도는 아들이라 부릅니다. 죄인이란 딱지를 떼고 형제라고 품어줍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두 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1) 그의 주인은 도망친 노예를 용서해 준 적이 없습니다. 2) 빚을 갚는 일도 남아 있습니다. 내가 피해를 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 받는 일과 손실에 대한 책임 문제입니다.

 

3) 성도는 하나님께 죄 용서함 받는 것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어쩌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나 물질적 피해를 입힌 상대를 용서 하지 않고, 원수처럼 여기고 끝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비록 바울은 주 안에서 오네시모를 아들로 여기고 형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몬 1:12절을 보면, 주인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그에게 편지를 주어 다시 골로새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자신이 피해를 준 빌레몬을 만나게 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주인의 용서까지 받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면, 이웃에게도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힌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가서라도 갚을 것은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성도가 이루어 내야 하는 온전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성도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남들이 입은 상처는 무시하고, 자신은 손해 하나 안 본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그리스도인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편리한대로 이해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바르게 알고,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용서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익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은죄 지은 인간을 폐기 처분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 다시 새롭게 된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격지심으로 낙심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익하게 쓰임 받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네시모는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서신을 전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당시 각처에서 성장하고 있던 교회에 서신을 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단들에 의해 공격 당해 진리로부터 이탈된 교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 다시올 때까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롭게 제직으로 임명 받은 분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로 나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네시모와 같이 주의 손에 붙잡혀 모두가 유익하게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한 때 하나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살았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만세 전에 죄인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습니다. 그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던 우리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려고 교회로 이끌고, 믿음이 생겨나게 강하게 역사하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 보다 먼저 예수를 만나 구원받고 감사하여, 복음을 전해준 헌신된 누군가가 또한 있었

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했고, 예수 믿기를 저항했습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에 주

저하다, 아버지 집에 돌아와 하나님 품에 안긴 우리들입니다. 이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더 나

아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한 종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