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3): 두기고 

4:7-8

 

 

새해부터 골로새서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두기고라는 한 인물이 언급됩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는 아닙니다. 20:4절 하반부에 의하면, 골로새 교회가 있던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시아 출신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역 사정과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7절에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이것으로 보아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의 편지를 골로새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이어서 8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정을 알리는 이 일을 위해 특별히 두기고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어서 나옵니다.

 

두기고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의 사정을 알게 하고, 골로새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당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당연히 교회에 알리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에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좀 의문이 생깁니다.

 

19:12절을 보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자에게 얹으면 아픈 사람들이 낫고 귀신이 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좋은 소식이면 온 교회 성도가 듣고 힘이 날 것입니다. 또 주위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전도가 일어나고, 교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누가 들어도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당시 교회는 로마의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누가 이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교회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또 예수를 믿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위험해 질 수 있는 그런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예수를 따르려고 하겠습니까? 복음 전도에 대한 성도들의 열정이 식을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더구나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두기고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가능하면 다들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전하는데 바울은 특별히 두기고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바울 사도 생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두기고 역시 제안을 부담 없이 수락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는 과연 어떤 성도였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1) 두기고는 무엇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성도입니다. 예수를 따를 때 자신이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를 잘 알고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해 줍니다. 예수를 전하는 일에 고난과 핍박이 온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삶의 본질적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오면 어둠은 저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받아 들이기를 싫어합니다. 빛이 비출 때 수치와 허물과 죄가 노출되기 때문에 복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받아 들인 사람은 자유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죄 용서함 받음은 이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행위로 범하는 죄보다, 양심에 꺼리는 허물과 죄가 더 많다는 것 인정하실 것입니다. 살다 보면 드러나지 않고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가 참 많다는 것 느끼고 삽니다.

 

사람들에게 노출된 곳이 아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짓는 죄가 더 많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두기고는 이런 우리의 죄 된 삶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을 너무나 잘 아는 성도입니다. 죄로 인해 다가올 심판과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는 행복한 삶을 너무나 잘 알고 느끼고 누리며 산 성도입니다.

 

비록 예수를 전하다 감옥에 갈지라도, 복음이 전해져야 행복한 삶을 사람들이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알기에, 힘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서신을 골로새 교회뿐만 아니라 에베소 교회에도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또 서신을 전달 하는 일 외에도, 힘든 사역지로 알려진 그레데 섬(3:12)과 에베소 교회를(딤후 4:12) 나중 섬깁니다.

 

박해 속에서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 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가올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두기고는 오직 예수만이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삶을 줄 수 있음을 알고, 목숨 바쳐 복음을 전했던 성도입니다.

 

사람들이 살다 부딪히는 문제들에 답을 제시하는 종교는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세상 종교는 자신과 다른 구원관도 인정하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 외에 어떤 것도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배타적입니다. 유독 예수만 왜 다른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가 전한 것이 진리임을 선포하는 태도입니다.

 

진리라고 믿으면 다른 것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진리가 되는 이유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구원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다 부담스런 어려움과 핍박이 올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두기고 역시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을 버리고, 교회생활이 무너지지 말고, 끝까지 주를 따르십시오라고 우리들을 격려하고 도전을 주는 성도입니다. 그는 예수를 어떻게 믿고 따르는지를 신실하게 전하다 나중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다 바울처럼 힘든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는 것도 성도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교회생활을 하는데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와도 무너지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통해, 복음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힘들다고 예수 포기하고, 교회조차 떠나 버렸다면, 누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겠습니까?

 

학기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면 수업 실험 논문 시험 인턴 졸업 취업 인터뷰 진학과 회사업무 승진 자녀양육 등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늘 다가옵니다.  편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만 주님 섬기면, 누가 복음을 믿고 예수를 따르려 하겠습니까? 주저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전해준 복음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주를 따랐던 두기고는 예수 믿는 것이 단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는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진정 교회를 사랑했던 성도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어지간한 어려움 정도는 거뜬히 넘어가는, 단단한 믿음이 가정과 개인에게 자리 잡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