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감사(1): 세상에 없는 평안 주심에 감사합니다

3:15, 14:27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한 달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감사할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도 억지로 감사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성도는 순간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가장 우선으로 죄 가운데서 심판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날개 밑에 나를 품으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3)지금은 문제로 다가와 답답하지만 앞으로 허락하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던 상관없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명령이고 훈련적 요소가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강제성이 다분히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이미 내게 베푸신 은혜만 깨달아도 당연하게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앞서 감사하는 이유들 외에 하나를 더 살펴 보고자 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케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요 14:27절에서 예수님은 나의 평강을 제자들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그리고 나의 평강이라는 말씀에서 소유격이 사용되었습니다. 평강 그 자체가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 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주님으로부터 온 평강이 아닌 것은 가짜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이 주는 편안에 너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과 명예를 주지 않고 마음의 평강을 허락하셨습니다.

명예를 주었다면 더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이름없던 어부들이 자수성가 했다면, 전도가 더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물질을 주었더라면 도움도 요청하지 않아도 되고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바울처럼 힘들게 돈 벌어가며 자비량으로 전도하지도 않았겠지요. 시간 절약하며 더 많은 곳에 다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대신 마음의 평안을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 보다 더 유익하고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 주님의 판단이 있었겠지요. 놀랍게도 2천년 전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그 평강을 허락해 주십니다. 예수 믿을 때, 우리 속에 내재하는 성령님입니다. 저는 예수 믿고 난 뒤 정말로 수지 맞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젊은 날에는 답답하면 마음의 평정(tranquility)을 찾아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자연에서 아니면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실패했던 마음의 평강(peace)을 예수를 만난 후 주 안에서 찾았습니다. 평정과 평강은 다릅니다. 호흡이나 명상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안정은 평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하늘의 선물이 평강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에게만 있습니다. 세상보다 크신 주님이 허락하는 선물이기에 내 속에 들어오면 충만함과 만족함이 넘치게 됩니다. 주님의 지상 사역에서 보여주신 평강의 모습을 한 번 보겠습니다.  

 

어느 날 타고 가는 배에 엄청난 파도가 덮칠 때, 제자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파도 한 가운데에서도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런 평강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자녀들에 대한 걱정, 청년들은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고, 졸업도 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 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를 둘러싼 불확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입니다. 주의 평안은 근심을 사라지게 합니다. 두려움에 더 이상 떨 필요가 없게 만듭니다.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놀라운 평안을 소유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축복이며 감사할 이유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라고 말합니다. ‘주장한다는 말은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운동 경기에는 심판관이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성도 역시 매 순간을 결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때 결정은 내가 하지만, 그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평강을 좇아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과정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면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성령이 기도의 응답으로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이 평안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 후에도 내게 허락하신 이 마음의 평강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생활로 되는 것입니다. 살전 5:16-18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순서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마음의 평강과 기도생활과 감사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성도에게도 불안과 걱정스런 일이 생깁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지배하게 하는 출발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 속에 평강의 에어백을 터뜨리는 작업입니다. 다시 그것을 평강으로 채우는 것은 감사입니다.

 

첫째가 기도와 감사였다면 두 번째로 내속의 불안과 두려움을 쫓아 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경우는 내 생각을 채우고 있는 염려 걱정 공포 보다 더 강한 것이 내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릇이기에 뭔가를 늘 채워야만 합니다. 11:24-26절처럼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악한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르침은 두려움과 걱정을 자꾸 내 속에서 끄집어 내라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명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눅11:21-22절은 우리를 불안케 만드는 것 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불안을 끄집어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되새기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찾아가는 시간을 주님께 드려 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할 때 나를 얽매는 불안과 초조함이 달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우리 모두에게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허락되어 있음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