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8): 안과 겉을 개혁하는 삶입니다
삼상 7:2-8, 10, 12-13
몇 주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에서 언약궤가
얼마나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2절을 보면 빼앗겼던 언약궤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기럇여아림(‘숲의
성읍’)이란 곳에 안착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납니다. 이 기간은 사무엘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기로 보면 좋겠습니다. 3절을 보면 본격적인 그의 사역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2 절 후반부를 보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잘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KJV 나 NASB는 ‘lament’ (하나님께 애곡하다), 현대인의 성경은 “슬퍼하며 여호와를 찾았다” 고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백성들의 모습은 언약궤가 돌아오고 20년 동안 자신들을
지켜주었기에 감사하여 애곡하며 여호와께로 돌아온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현실의 문제 때문에 백성들의
우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이런 모습은 전에 사사기 시대에 너무 자주
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면 이방인들이 침입하여 억압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울부짖는 모습과도 너무나 같습니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지만 블레셋에게서 괴롭힘을 당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3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게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행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어서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고통 앞에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무엘은 비전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350년 사사시대의 이 질긴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과
밖이 완전히 변하는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사는
성도들에게도 반복되는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끊지 못하면, 앞으로 개인과 우리들의 가정을 통해 이루어 나갈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지연될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죄를 짓고 난 뒤 처리가
중요합니다. 1) 죄를
또 지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말기 바랍니다. 죄를 가만히 묻어 두어 다시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이
말은 회개가 있는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나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2) 이때
내 죄를 공동체 앞에 내어 놓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성령이 강하게 내 마음을 움직일 때, 정말 작은 부끄러움일지라도 공동체 앞에 고백하는 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얼굴을 들기 힘들 수 있지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3)내가
실행으로 옮길 것이 구체적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바알과 그의 아내인 아스다롯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그냥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서 그 종교가 제시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이 가지는 가치관은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폭풍의 신 바알과 풍요의 신 아스다롯은 가나안의 신들입니다.
남녀의 성적관계를 통해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사고를 세상에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성들은 이방 신전에 와서 술을 마시고 여 사제들과 관계를 갖는 난잡한 생활을 실제로 하며 살아갔습니다.
여성들은 이런 우상들을 만들어 자신들의 집에
모시고 섬겼습니다. 심지어 몸에 지니고 다니며 자녀를 많이 낳게 해 달라고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점점 하나님보다 이런 신들이 가정에 복을 주고, 농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더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치는 생각을 지배하게 되고,
생각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런 이스라엘의 삶을 보고 전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그래서 겉과 속을 바꾸는 개혁을 시도합니다. 입으로의 회개와 마음의 결단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가치관에 따라 사는 실제 삶을
버려야 합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성도들을 사로잡는 세상 가치관은
주일 예배를 경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코비드로 교회는 온라인 오프라인 올 라인으로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가 꼭 지킬 것은 주일예배입니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주일 예배 영상으로 보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앙 성장을 위해 평상시에도 주일 예배
영상을 덤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주일 예배 영상은 정말 대면예배 현장에 나올 수 없는 분들을
위함입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영이 하나되어 내가 섬기는 믿음의 공동체와 같은 시간에 함께 동참하여
하나님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영상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찾아내어 생각과
말 뿐이 아니라, ‘순종하는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엘은 3절에 우상을 제거하라,
5절에 ‘기도를 위해 미스바로 모이라’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4절에서 이스라엘은 우상을 제거합니다. 6절에는
미스바로 모여듭니다. 순종할 때 그들에게 허락된 놀라운 복을 보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틈을 타 블레셋이 기습을 합니다. 결과를 12-13절에서 보면 무참히 깨집니다. 하나님은 안과 겉을 새롭게 한 성도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돕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손이 사탄의 계략으로부터 자녀들과 가정을 막아주십니다. 이 복을 다 함께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