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6): 죄를 완전정복 해야 합니다 

삼상 5:2-8

 


하나님의 백성도 실패하곤 합니다. 지난 주 사무엘상 4장에서 보았던 경우일 것입니다. 많은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이셨는데 그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는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습니다. 삼만 사천 명의 이스라엘이 죽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자존심과 같았던 언약궤 마저 적의 손에 빼앗겼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패배일까요?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자존심이 몹시 구겨지고 패배의식에 잠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사무엘상 5장 전체를 다 읽어보아도 전혀 하나님은 기가 죽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방전이 안된 상태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도움도 없이 적지에서 하나님 되심을 스스로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을 무참히 깨어버린 이방신의 신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휘하십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두게 됩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패하면 하던 고대사회의 하나의 관례입니다. 패전국의 신은 자신을 이긴 신을 섬긴다는 의미로 승전국의 신전에 두게 됩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하나님의 건재하심이 나타냅니다.

 

아침에 보니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이긴 다곤 신의 얼굴이 땅에 엎드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짓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다시 다곤 신을 세워줍니다. 4절에서는 더 심하게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부러져 몸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사실 자신을 해치는 인간 하나 못 막는 신이라면 말이 안되긴 합니다.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드디어 발생합니다. 6절을 보니 이제는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나서 괴롭힘을 당합니다. 이것조차도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뒷부분 9-12절을 다 읽어보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드나 또 에그론이란 곳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다곤 신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여호와라는 신이 엄청난 재앙을 자신들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다곤 신이 넘어지고 부러지는 것은 침묵으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7절을 보면 자신들이 직접 재앙을 당하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포로가 되어 적진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하나님 되심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한편으로는, 전쟁에서는 지고 그 전쟁을 이기게 한 이방 신은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을까요? 왜 스스로 체면까지 구기시며 스스로 적들의 땅에 들어와 계실까요? 그런데 왜 또 스스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능력은 나타내고 계실까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실까요?  

 

먼저 살펴 볼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의 어떤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 8절에 의하면 가장 먼저 아스돗에서 나중 가드로 옮겨 갑니다. 삼상 6:17절에 의하면 이 두 곳은 블레셋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자랑하던 다섯 도시들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11:2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고 말합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열심히 정복사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정복하지 못하고 남은 땅들이 바로 아스돗과 가드였습니다.

 

350년의 사사시대 동안 정복되지 못한 블레셋 땅에 하나님이 스스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전달합니다. 실패의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 번도 실수나 실패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으시는지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 원망이 일어납니까? 왜 나만 안 도와주냐고 불평하십니까? 신앙생활에서 멀어지려고 하십니까?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려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완전히 허물과 죄를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나의 죄된 습관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종 중독일 수도 있습니다. 또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비교 원망 비난 거짓말 하는 것, 남을 정죄하는 것, 나의 정욕에 이끌려 죄를 계속 짓는 것, 두려움, 내 생각만 주장하는 자기고집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완전히 이런 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내 속에 남아 있으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듭니다. 말씀이 손에서 멀어지고 기도가 줄어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말씀보다 세상 소리가 더 귀에 들리고 하나님이 무능해 보입니다. 믿음 생활 자체가 싫어지고 교회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결국 나를 넘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33:55절은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의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 일은 실제 언제 일어났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언약궤가 아스돗에서 가드로 넘어갑니다. 가드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은 나중에 다시 블레셋의 침공을 받아 자신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삼상 17:4절을 보면, 그 주인공이 바로 골리앗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가드 출신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내게 있습니다. 먼저 이것 인정하기 바랍니다. 예수 보혈 의지하고 십자가 밑에 나아가 회개하기 원합니다. 어떤 죄도 이기도록 힘 주시고 능력 주시는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승리를 선포하며 죄와 대적하여 싸우십시오. 악한 죄들을 완전히 정복하는 멋진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