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1): 구한 것을 허락 받는 인생
삼상 1:1-3, 7, 10-15
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분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노벨상을 받는 분들을 볼 때 그런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라면 올림픽 메달을 따는 선수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여행하면서 멋진 건축물을 보면, 설계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혹시 누가 부러워 보이는지요? 저도 목회자가 되고 난 뒤 사실 부러운 분이 있습니다. 대형 교회에서
큰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아닙니다.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저는 성경책을 제외하고는 읽은 책을 다시 잘 안 봅니다. 그런데 예외가
한 권이 있습니다. 기도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의 책입니다.
목회자라면 리더십, 말씀의
능력,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에 응답 받는 사람을 가장 부러워합니다. 성도가 가장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 받는다면, 그것보다
더 부러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기도
하면 응답 받을 수 있을까요? 성도들이 많이 듣기를 원하는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기도에 대한 응답의 체험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다 응답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답들이 있겠지만 몇 가지만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성도는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제목을 붙잡고 계속 이어가고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전에 내가 어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 기도 중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기억 속에 있는 것과 실제 기도는 다릅니다. 이것이 성도가 빠지기
쉬운 실수입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기도했어요’ 라는 과거 행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간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기도응답의 조건입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응답의 때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2주 동안 영어부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고 엄청난 수가 참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지금부터는
조금 더 깊이 있게 기도에 응답 받는 비결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도 하고 남편에게로부터 엄청난 사랑도 받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늘
이것이 그녀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매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남편을 따라 기도하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에 ‘매년 올라 갔다’는 표현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이것은 상당한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응답 받습니다. 수년 동안 응답 받지 못했던 그녀의 기도가 응답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10절을 보면, 통곡하며 마음에 괴로운 것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요즘 최근에 울며
기도하신 것 기억이 나는 지요? 3천 년 전에 울며 기도하던 한 여인이 응답 받았다면, 우리도 울며 부르짖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나아오는 자들을 위로해 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11절에는 서원까지
합니다. 이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아침에 우리 졸업생 한 분으로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6년
전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갚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내가 약속한 것을
지켜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오래 기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상당히 긴 기도 시간을 의미합니다. 한번 앉으면 다리가 아픈
정도를 넘어 저릴 때까지는 기도하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3가지를
나누었는데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의 마음입니다. 나에게 지금 도전을 주는 것을 붙잡고 실행해 나가기 원합니다.
한 가지를 더 나누려고 합니다. 15절에 ‘여호와 앞에서 내 심정이 통한 것 뿐’이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도대체 ‘내 심정이 통하다’ 는 무슨 뜻입니까? 가장 잘 번역된 것은 현대인의 성경으로 ‘내가 너무 마음이 괴로와서 나의 심정을 여호와께 털어놓고 있었다”고
번역합니다.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자신의 상한 심정을 속속들이 쏟아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라는 말입니다. 13절에서는 그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라는
말은 자신의 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상대방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기도는 일방적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반드시 두 사람의 대화처럼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한나처럼 우리 기도에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내가 정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듣기 원하시며 반드시 말을 걸어오십니다. 이 체험이 있어야 되고 그 ‘감’이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아와 대화가 시작되면 이때는 하나님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 내가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입니까?’ 아니면
‘저것입니까?’ 또 적극적으로 ‘왜 이것은 안됩니까?’ 따지고 질문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분은 이때 하면 좋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대화조차 안 걸어오고 오래 기다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거의 시간이 완료 되어갈 때쯤 되어서야 하나님이 직접 준비한 것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이런 모습이 성도의 기도생활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후에 어느 날 주님이 직접 말을 걸어 오는 때가 있습니다.
한나의 경우입니다. 이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때는 밥 안 먹고 출근해도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주님 붙잡고 늘어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한나가 ‘오래 기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언제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답이 두 개로 정리되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결정된 된 때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아닌 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정리와 결정이 되면 주님이 찾아옵니다. 이 때 가장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평강이 찾아 오거나, 크게만
보이던 문제가 작게만 느껴지기 시작하면 감사 기도로 전환하십시오.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응답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구한 것을 허락 받는 멋진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