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2): 경주자로 달려 가십시오  

딤후 2:5

 

 

다들 무슨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마무리가 되어야 멈추게 됩니다. 중도에 그만 두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실험을 하는 분들은 결과가 나올 될 때까지 자리도 못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달려 결승점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나 신앙생활을 흔히 경주에 비유합니다.

 

둘 다 경주이기에 승리를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신앙은 경쟁이 아니기에 남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또 성도가 도달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도 다릅니다. 둘 다 인생이라는 험한 골자기를 지나갑니다.

 

세상은 험한 골짜기 안에 멈추기를 원합니다. 그 골짜기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과 때로는 대박을 터뜨리고 부귀와 명예를 갖다 주며 유혹하는 것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 나아가 최종 목적지를 소망하기 보다 늑대와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골짜기에 더 안주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이 있는 골짜기에 머물고자 하지 않습니다. 더 가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문 앞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왜 우리는 그곳까지 가야만 합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하는 이 세상이 왜 우리에게는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까?

 

이 질문은 우리를 늘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정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도록 증명은 못하지만, 믿음으로는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갈 천국이 이 땅의 모든 분들이 도달해야 할 최종지점이 되기를 원합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전쟁, 아픔 차별도 없고, 인간이 인간됨을 상실하는 것도 없는 천국을 맛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눈물도 없이 즐거움뿐입니다. 죄도 없는 곳입니다. 불안하게 만들고 놀라게 하는 어두움도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 곳이면 세상 사람들도 그곳을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 경주자가 되어 그곳까지 멈추지 말고 달려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달려가는 성도들을 향해 주의를 한 가지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상반부를 보기 바랍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법대로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5절 하반부를 보면, 아무리 잘 달려 우승을 한다 할지라도 법을 어긴 사람은 승리의 면류관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88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이 미국의 칼 루이스를 간 발의 차이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합니다. 나중 약물 복용이 밝혀져 금메달이 박탈당하고 다른 경기에도 몇 년간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법대로 경기하라는 이 말씀을 우리 신앙생활에 좀 더 잘 적용하려면, 로마 당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선수는 경기 이전에 10 개월 정도 예비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정해진 양의 식사만 하고, 체중을 관리하는 등 지켜야 할 약속들을 반드시 이행해야만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법대로 경기하라는 의미는, 남들에게 예수를 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예수님 말씀대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해도 잘 안 받아 들여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세상을 향해 또 우리 자녀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말하기가 힘이 듭니다.

 

법대로 경기하라는 오늘 이 본문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나는 남들을 사랑하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것은 움켜쥐고 있으면서 남들에게 구제하라고 말합니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말해도 받아들이고 싶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분들은 사람 눈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맞습니다. “사람들이 안 보아도 기도하고, 성경 읽고, 가난한 분들 구제하고, 예수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과연 그런 분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는 분들은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함께 하는 기도의 자리에, 말씀 읽는 자리에, 예배의 자리에, 구제와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 함께 배우는 곳에 안 보이면, 아무리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신앙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혼자 성실하게 해 오던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허락하시고, 성도가 함께 해야 하는 신앙생활도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온 백성들과 함께 기도했던 모습 등이 예가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말씀을 읽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거의 모든 것이 함께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떡을 떼고 물건을 나누는 일을 함께 합니다. 함께하면 힘도 나고 도전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도들 간의 배움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믿었던 선배들은 주일 예배 자리에 장로님들이 앞에 앉았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에 교회를 다닌 분들은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 옛날의 모습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아무리 좋은 전통도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정신만은 지켜져야만 합니다. 감사하게도 영어부 ER청년들이 가을부터 트리니티에서 월-금요일 새벽 기도회를 가지게 됩니다. 또 감사할 일은 기혼 목장이 발표되면 토요 새벽기도회에 온 성도가 함께 하는 시간을 다시 갖게 될 것입니다.

 

힘든 때일수록 정해진 공간에서 기도하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토요일 새벽 기도회만큼은 온 성도가 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 형편으로 주중에 못 나오시는 분들은, 각자 있는 자리에서 꼭 기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고, 말씀으로 치유 받아 매일 승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가을이라는 새로운 계절의 출발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출발일지라도 기도가 우선입니다. 기도 없이는 안됩니다. 기도 없이 된 것은 곧 무너집니다. 성도가 8월 한달 새로운 출발을 결단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법대로 다들 먼저 살아내는 온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어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달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